[월드투데이] 엔低정책과 동아시아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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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국내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엔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아시아 주변 국가 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엔화가 달러당 1백40엔을 돌파한다면 동아시아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일본 역시 그 악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지난 1995년 8월 이후 일본 엔화 가치는 큰 폭의 하락세를 보여왔다.
이는 주변 아시아 국가의 무역에 악영향을 미쳤고, 결국은 아시아 금융위기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본의 엔저 정책이 아시아 지역에 통화전쟁을 일으킨다면 중국 역시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중국 위안화는 사실상 미국 달러에 고정돼 있다.
동아시아 각국의 화폐 평가절하는 위안화에도 심각한 압력을 가할 것이다.
중국 외환시장의 자율화 정도가 높아지고 있다.
위안화 가치는 점점 더 국제수지 및 기타 다른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게다가 중국의 수출증가율은 이미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엔화 평가절하는 중국교역에 심각한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엔화 평가절하는 결코 일본 경제의 불황을 돌려놓을 수 없다.
수출이 일본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 안팎에 불과하다.
순수출액이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 남짓이다.
수출 부양효과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지난 98년 8월 엔화가치는 달러당 1백47엔까지 치솟았었다.
그럼에도 일본 경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엔화 저평가는 오히려 일본 금융기관의 손실, 불량채권 문제 가중 등의 문제를 낳을 뿐이다.
일본이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수부양 정책을 써야 한다.
환율정책은 아무런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일을 그르칠 수 있다.
일본은 통화가치 절하로 수입제품의 가격을 인상, 인플레를 유도하려 한다.
이를 통해 디플레 및 실제 채무 증가의 악순환 고리를 끊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수입가격 상승에 의한 인플레는 '비용상승(cost-push)'요인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비용상승 인플레는 기업의 이윤을 줄이고, 이는 곧 투자와 소비의 감소로 이어질 뿐이다.
일본은 현재 대규모 경상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자본수지는 적자다.
자본수지 적자 규모는 경상수지 흑자폭을 훨씬 초과한다.
자본수지 계정을 통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엔화를 붙잡아 두기 위해서는 엔화 강세를 유지해야 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엔화 약세를 유도하는 것은 반(反)시장 정책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중국은 그동안 외환시장 안정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왔다.
아시아 지역 경제의 안정을 위한 책임 있는 정책이었다.
아시아 금융위기 때 중국이 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위안화를 평가절하하지 않은 게 이를 말해준다.
그럼에도 일본이 중국의 환율안정화 정책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하지 않고, 심지어 위안화의 평가절상을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일부에서는 심지어 '현재 경제난은 중국이 조성한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일본은 자국 내부의 문제로 발생한 경제난을 들어 중국의 환율정책을 바꾸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다.
일본이 아시아 경제의 안정화 의무를 망각한다면 최근 수년간 추진해온 각종 노력이 물거품으로 끝날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일본은 미국의 지지 또는 묵인이 없다면 통화가치를 절하하지 못한다.
미국도 엔화 평가절하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정리=한우덕 베이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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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위융딩(余永定)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이 최근 중국 일간지 롄허짜오바오(聯合早報)와 가진 인터뷰 내용을 재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