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07:51
수정2006.04.02 07:53
윤태식씨로부터 패스21 주식을 받은 51명의 명단이 시중에 나돌면서 "한국경제신문 기자는 정말 없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진짜 없다"고 대답하면 반응은 대개 두가지로 나온다.
하나는 "한경만 물먹은 거 아니냐"는 것이고,또 다른 하나는 "다행이다" "큰일날 뻔 했다"는 위로의 말이다.
두가지 반응 모두 ''받는 게 일반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어 기분이 씁쓸하다.
언론인의 도덕성이 그만큼 떨어졌다는 점에서 얼굴이 화끈거린다.
특히 이번 명단에는 경제지 인사가 7명이나 들어 있어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안타까움과 함께 부끄럽기 짝이 없다.
주식을 받은 언론인들은 검찰의 구속요건인 대가성 여부를 떠나 먼저 도덕적 질책을 받아야 마땅하다.
거창하게 ''언론의 사회목탁론''까지 들먹일 필요없이 기자라는 자리를 이용해 부당한 개인적 이익을 취했다면 어떤 형태로든지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특히 장외에서 몇십만원 가는 주식을 액면가나 무상으로 받았다면 특혜성 뇌물의 소지가 다분히 있다.
그러면 과연 주식을 받은 기자들만이 잘못한 것일까.
기자(데스크 포함)의 능력만으로 특정회사의 기사를 그렇게 크게 취급할 수 있는 것일까.
이들을 옹호하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편집국에 몸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하나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도 패스21을 담당하고 있는 IT팀장이지만 마음대로 지면에서 특정회사의 기사를 키울 수는 없는 게 신문사다.
이는 언론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수긍할 것이다.
패스21 기사를 1면에 크게 키우고,윤태식씨 인터뷰를 1개면 전체에 걸쳐 게재하고,벤처기업에 지나지 않는 패스21을 수십회에 걸쳐 크게 쓰는 게 기자만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 꼬리를 문다.
회사 차원의 지원이 없었다면 일어나기 힘든 일이라는게 필자의 판단이다.
만약 회사차원에서 패스21을 지원했다면 문제의 기자들은 회사를 위한다는 생각에 별로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기업홍보에 나섰을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주식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가성 여부를 회사차원에서도 한번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신문이 귀한 지면을 그렇게 크게 패스21을 위해 할애했다면 반드시 반대급부가 있지 않았을까.
문제의 기자들은 ''깃털''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본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이 부분에 대한 의혹도 확실하게 불식시켜 주길 바란다.
이번 사건에 경제지 기자들이 다수 관련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경제지에 대한 전체적인 이미지는 상당히 손상됐다.
또 경제지 기자에 대한 불신의 눈초리도 따갑게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한국경제신문도 선의의 피해자이고,이 사건과 관련 없는 수많은 경제신문 기자들도 모두 피해자다.
따라서 경제지 종사자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 첫단계로 언론인으로서,언론기업으로서 정도를 걷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지야말로 세월이 흐를수록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시대와 사회를 선도하는 언론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언론의 정도를 걷기보다는 ''언론권력''을 이용해 사세확장에만 혈안이 돼있는 건 아닌지,기자들을 비즈니스맨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
기사를 잘 쓰는 기자보다 사업을 잘 하는 기자를 더 평가하는 회사가 있다면 그건 언론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물론 신문사도 기업이다.
기업이기 때문에 이익을 내야 한다.
하지만 일반 사기업과는 다르다.
사회적 영향력,즉 일종의 권력을 갖고 있는 기업이다.
이 권력을 이용해 언론의 정도를 벗어난 경영행태를 보인다면 그것은 폭력이다.
폭력으로 이익을 취한다면 조폭과 다른 게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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