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임오년이 밝았다. 말띠 해다. 말은 유목 민족과 밀접하다. 유목 민족은 먹을 것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그만큼 속도를 중요시 한다. 벤처기업과 유목 민족의 성격이 유사하다. 벤처기업이 속도에 뒤지면 시장에서 바로 퇴출되기 때문이다. 말을 모는 속도가 느려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면 유목 민족은 그야말로 끝이다. 마찬가지로 벤처기업이 신제품이나 신기술을 6개월 이내에 내놓지 못하거나 성능을 향상(업그레이드)시키지 못하면 뒤를 쫓아오던 기업에 추월당한다. 그만큼 한눈을 팔아서는 안되는게 벤처기업이다. 지난해는 각종 ''게이트''로 얼룩져 벤처기업인들이 얼굴을 들고 다니질 못할 정도로 의욕이 상실된 한 해였다. 그만큼 비난도 많이 받았다. 속도는 꿈도 꿀 수 없는 지경이었다. 하지만 미래의 한국 경제를 이끌어 나갈 기업은 벤처기업이라는데 두말할 필요 없다. 이는 창업이 끊이지 않는데서도 잘 알 수 있다. 서울 지역의 벤처기업 수는 지난해말 현재 5천3백45개로 집계됐다. 이는 2000년 말보다 1천2백77개가 늘어난 수치다. 벤처 열기가 식지 않았다는 말이다. 어둡고 긴 침체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나래를 펴려는 벤처기업들이 있다. 지난해 얼어붙은 국내외 경기에도 불구하고 세계 무대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기업들이다. 겨울이 오면 봄이 곧 온다는 말처럼 이들 기업들은 이제 활짝 꽃을 피울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 세계적인 기술력과 내실 경영으로 무장하고 밝게 길을 비추며 나아가고 있다. PCB(인쇄회로기판) 제조장비업체인 한송하이테크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수출을 하고 있다. PCB 제조 생산라인의 첫 공정과 마지막 공정인 로딩(loading)머신과 언로딩(unloading)머신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본딩머신도 세계 두번째로 개발했다. 주영스크린은 최고 수준의 광학스크린 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디지털영상관련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자체 개발한 후면투사 광학스크린 기술과 후면투사스크린의 멀티패널 결합장치 기술로 세계를 노크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PC기능까지 지원하는 최대 1백20인치짜리 초대형 스크린을 양산할 방침이다. 알파캐스트는 DVD(디지털다기능디스크) 플레이어를 자체 브랜드로 개발, 가전분야에서 대기업과 경쟁하고 있다. 겁없는 벤처기업인 셈이다. 모바일 DVD 개발을 마치고 판매에 들어갔으며 다음달에 휴대용 DVD를 출시한다. 넷피아는 한글인터넷 주소 서비스를 하고 있다. 인터넷 웹 브라우저의 인터넷 주소란에 영어 대신 한글만 치면 해당 홈페이지로 연결되는 서비스다. 다국적 기업인 MS사와 한판 경쟁을 벌이며 한민족의 재산인 한글을 지키고 있다. 누리텔레콤은 1990년대말 전산자원관리시스템과 자동원격검침시스템을 주무기로 다국적 기업이 장악한 국내 시장에 홀홀단신 뛰어들어 3년만에 리딩업체로 부상했다. 무차입 경영과 지속적인 연구개발, 공격적 경영으로 지난해에도 70%가 넘는 고속 성장을 이뤄냈다. 데이터베이스 컨설팅업체인 엔코아정보컨설팅은 매출액 이익률이 30%에 육박한다. 49명의 직원중 44명이 연구인력일 정도로 기술력을 자랑한다. 케이디미디어는 복권 제조라는 특수인쇄 분야에서 쌓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DVD타이틀 전문회사로 변신중이다. 연간 5백만장 규모의 DVD 타이틀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으며 경기 파주출판문화정보단지 내에 제2공장 설립을 준비중이다. 이밖에도 여러 기업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이들의 활약상을 기대해 보자. 김문권 기자 m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