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Economist 본사 독점전재 ] 개발도상국의 재벌들이 수술대에 올라서 있다. 스스로 옷을 벗고 온 몸에 칼을 댄다. 얼굴 윤곽을 살리기 위해 턱을 깎아내고,체중을 줄이기 위해 뱃살을 잘라 낸다. 눈에 포인트를 주기 위해 쌍꺼풀 수술도 마다하지 않는다. 수술이 끝나면 입을 요량으로 산뜻한 옷과 선글라스도 마련했다. 재벌들은 과연 ''환골탈태''에 성공할 수 있을까. 혹시 수술 부작용이나 후유증으로 심각한 상태에 빠져들진 않을까. 이 문제에 집중하다 보면 ''재벌은 무엇인가''''재벌은 어떤 장단점이 있는가''하는 것들로 생각이 미치게 된다. 쉽지 않은 질문이다. 그러나 결론을 내리기 전에 이들을 제대로 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역사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먼저 미국의 예를 살펴보자.오늘날 미국은 전문화된 기업들이 번성하는 곳이다. 기업들도 대부분 한 ''우물''만 판다. 금융 반도체 등 특정 분야에만 몰두해 세계 시장을 호령하는 기업들이 널려 있다. 하지만 이런 미국도 1백년 전만 해도 현재의 개도국들과 별반 다를게 없었다. 그 당시 미국의 거대 기업들은 십중팔구 잡동사니와 같은 사업구조를 갖고 있었다. 기업 분할이나 분사가 유행처럼 번진 것은 1970년대 이후의 일이다. 물론 그 이유는 시장이 점차 효율성을 지향하는 구조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 재벌들의 변신을 야기한 시장의 효율성은 어떻게 확보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크리스나 팔레푸 교수와 타룬 칸나 교수는 ''전문화된 매개자의 등장''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두 교수들은 자본시장의 경우 ''전문화된 매개자''로 증권사 애널리스트,펀드매니저,회계사 등을 꼽고 있다. 노동 시장에선 경영대학원,직업학교,자격증 학원등을 ''전문화된 매개자''의 범주에 넣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개발 도상국들은 전문화된 기업을 갖기 어려운 태생적인 환경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비효율성이란 단어와 동의어로 인식되고 있는 재벌들이 글로벌화된 무한경쟁 속에서 결국 도태되고 말 것인가. 이 문제 또한 쉽게 결론을 내리기 힘들다. 방만한 사업구조와 불투명한 회계구조를 갖고 있는 재벌들이 첨단 기술과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다국적 기업과의 경쟁에서 생존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벌들이 모두 경쟁의 대열에서 낙오할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힘들다. 재벌이 제한적이긴 하지만 변신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제도보다는 연고에 의해 비즈니스가 결정되는 개도국에선 재벌은 아직도 막강한 자생력을 갖고 있다. 오히려 다국적 기업보다 비즈니스를 벌이기에 더 유리할지도 모른다. 이제 재벌이 글로벌화된 세계 경제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전문화된 기업군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것은 진리에 해당한다. 다행히 재벌들도 이런 시급함을 인식하고 있다. 더욱이 이들에게 다행인 것은 그나마 어느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금방 후진국의 불투명한 사회구조가 투명한 사회구조로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벌의 생존은 결국 이 주어진 시간 내에 합리적인 기업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변신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정리=김태철 기자 synergy@hankyung.com .................................................................... ◇이 글은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5일)에 실린 ''Conglomerates in developing countries''란 칼럼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