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펀더멘털이 달라", 원-엔 결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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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와 엔화간의 괴리가 벌어지고 있다. 한·일 양국간의 수출 경쟁력을 감안, 지난 29개월 동안 강한 마지노선으로 작용했던 ''100엔=1,000원''이 새해 들어 본격적으로 붕괴된데 이어 990원도 쉽게 허물어졌다.
엔/원 환율은 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오후 3시 3분 현재 100엔당 987.34원을 가리키고 있다.
정부의 구두개입과 국책은행의 달러 매수세가 원-엔 ''10대1''에 대한 경계감을 심어주고 있었으나 시장은 수급상황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하락의 골을 깊게 하고 있다.
정부도 일본 정부의 ''엔저 유도''에 대한 불만과 비난 발언을 거듭 내뱉고 있으나 환율이 일국의 경제상황을 대변한다는 원론에 비춰 엔/원의 추가 하락을 용인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장 참가자들은 엔 약세의 진행에 눈을 떼지 못하면서도 당장의 수급상황을 감안, 고민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정부에서 어느 정도 선까지 용납할 것인지, 엔 약세의 진행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예측불허의 상황에서 연말부터 지속되고 있는 공급우위의 장세와 맞물린 시장 판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 옅어지는 정부의 개입 강도 = 최근 주춤했던 엔 약세의 진행이 8일 일본 정부의 ''펀더멘털 반영론''의 재언급을 계기로 132엔대 중반까지 오르는 급등세를 띠고 있다. 주변국의 반발에도 아랑곳없이 ''나의 길을 가련다''는 식의 일본 정부의 방침이 시장에 전이되고 있는 상황.
그러나 이에 대해 한국정부 등이 맞대응할만한 상황도 아니다. ''환율 전쟁''이란 단어를 끄집어내 ''협박''까지 했음에도 기본적으로 일본과 다른 경제 펀더멘털과 시장의 수급상황을 고려하면 추세를 뒤집는 것도 위험부담이 따른다. 수출도 하루아침에 일그러지는 상황까지 직면할 것이란 전망은 어렵다.
이에 따라 정부의 방침은 지난해 말 ''100엔=1,000원''의 개입 시점을 새해 들어 995원으로 낮춘데 이어 990원이 무너진 상황에서도 특별한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특히 이날 국무회의를 통해 재경부는 투자은행의 전망을 예로 일본의 경기침체가 심화될 경우 달러/엔이 140엔대까지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하고 이는 특히 중장기적으로 수출경쟁력 제고노력을 가속화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했다. 환율에 기댄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하는 ''약한'' 체질을 개선하고 시장의 전반적인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야 함을 강조한 대목이다.
일본정부에 대해 엔화 약세보다 구조조정을 통한 신뢰회복 노력을 ''촉구''하겠다는 정부의 입장도 지난해 연말 ''환율 전쟁''까지 들먹이던 강한 불만에 비해 누그러진 수준이다. 다만 달러/엔 상승과 방향을 같이 하면서 한번에 괴리감이 너무 커지지 않도록 하는 ''전략상 후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국책은행의 달러매수를 통해 시장에 끊임없이 경계감을 주입시키면서 정부 입장의 적극적인 형태의 개입은 않고 있는 것이다.
◆ 엔/원 추가 하락 ''당연시'' = 시장관계자 대부분도 1,000원이 무너지면서 점차 누그러진 경계감이 ''추가 하락도 가능하다''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연초부터 계속된 대규모 외국인 주식순매수, 증시에 대한 긍정적 시각 등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비록 외국인이 순매도를 보이고 증시가 하락 조정되고 있으나 기본적인 경제여건은 환율 하락쪽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중장기적으로 950원까지 내려설 것이란 판단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특정레벨을 섣불리 언급하기는 일단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일단 시장분위기를 따라가면서 섣부른 예측보다는 수급과 시장 여건 변화에 따른 대응이 보다 효과적이란 판단이다.
외국계은행의 한 딜러는 "시장 전반적인 분위기는 일단 엔/원 추가 하락쪽으로 잡혀 있다"며 "원-엔 10대1이 깨지면서 달러매수(롱) 심리를 많이 버렸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의 다른 딜러는 "1,000원 수준에서 점진적으로 빠질 것으로 예상했던 바였으나 오늘은 속도감이 조금 과한 느낌도 있다"며 "물량에 짓눌리는 경향이 짙어 달러/엔만큼 달러/원의 상승이 절대폭만큼 오르지 않은 탓"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물량 부담이 다소 경감되는 시점에서는 달러/엔을 따라가면서 조정될 것"이라며 "시장 추이에 맞춰 절대 레벨을 정하기 보다는 점진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경닷컴 이준수기자 jslyd0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