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전·현직 임원에 대한 손해배상 판결에 대해 ''경영판단의 원칙을 무시한 졸속재판''이라고 비판한 나의 한국경제신문 시론(1월4일자)에 대해 김주영 변호사는 ''3년 걸린 재판인데…''라는 제목으로 반론(1월8일자)을 제기했다. 김 변호사는 1985년 트랜스 유니온사건과 관련된 미국의 델라웨어 주최고법원의 판결을 예시하면서 내가 구미법원에서 확립된 경영판단의 원칙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오해하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김 변호사다. 트랜스 유니온사건 판결은 경영판단 원칙의 예외였다. 이 판결 이전에는 이사의 주의의무에 대해서는 법원이 개입하지 않는 것이 전통이었다. 오로지 개인적 이익을 위한 판단만을 법원이 개입하는 것이었다. 사기 횡령,배임 등이 그것이다. 이런 내용의 경영판단 원칙을 ''충분한 정보에 입각한 결정(informed decision)''만을 보호한다는 의미의 경영판단 원칙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이 판결은 만장일치도 아니었다. 5명의 재판관중 현명한 2명이 반대했다. 김 변호사는 이런 예외적 판결을 경영판단 원칙의 표준 내용으로 이해하고 있는 우를 범하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같은 해에 게티오일 회사에 대해 바로 그 최고 법원이 내린 판결이다. 얼마나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가,얼마나 면밀하게 조사해야 하는가 등은 전적으로 경영자들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사항이지,법원이 개입할 사안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종전의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전의 판결이 선례가 되어 업계에 미칠 비생산적 파장 때문에 바로 그 다음해에 델라웨어 주의회는 회사법을 개정했고,이 개정을 모범으로 해 그후 다른 주에서도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 이 조치의 공통된 핵심 내용은 법원이 주의의무에 대해서는 개입하지 않고,대신 회사의 자율과 시장에 맡기자는 원칙이다. 이 원칙을 오늘날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미국의 그 예외적 판결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는 것이 삼성전자 전·현직 임원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다. 이런 ''예외''가 우리사회에서는 ''원칙''이 되어버린 것이다. 김 변호사는 경영자의 경영판단 관련 기록이 수천페이지에 달하고,오랜 시일에 걸쳐 증거조사작업이 이루어진 판결이기 때문에 이 판결은 ''객관적 판결''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경영판단 기록이 수만장이든,증거조사 작업이 수십년을 걸렸든 경영판단 세계의 복잡한 속성 때문에 법관이 경영판단의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리고 법관 자신의 주관적 판단에 의한 재판은 아무리 보아도 졸속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자료의 충분성 여부,투자에 대한 검토의 적정성 여부를 법관이 도대체 어떻게 판단한단 말인가. 김 변호사가 ''이번 삼성전자 재판의 하이라이트''라고 말하는 삼성전자 측의 증언도 마찬가지다. 증인이 "불충분하다"고 말하는 것도 그 자신의 주관적 판단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증인의 주관적 판단을 재판의 증거로 삼을 수도 없다. 또 이 증인이 "대안 검토도 없었다"고 말한 것 역시 이 재판의 증거가 될 수 없다. 대안 검토의 필요성이 있느냐의 여부도 경영자 스스로 판단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재판이 졸속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증인의 주관적 판단을 재판의 증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판단의 잘잘못을 가려내는 일을 시장에 맡기자는 주장에 대해 김 변호사는 우리나라에 그런 시장이 존재하는가라고 묻고 있다. 그러나 시장이 없으니까 법원이 경영판단에 개입해야 한다는 김 변호사의 주장은 논리의 비약이다. 시장은 방해요인이 없다면 언제나 저절로 생성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의 할 일은 시장의 생성을 방해하는 제도와 편견을 제거하는 일이지 ''오너의 지시''운운할 때가 아니다. 선험적인 법의 잣대로 시장경제를 볼 때는 이미 지났다. 시장의 원리와 자유의 원리에서 법률을 보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법률 전문가의 태도라고 믿는다. 자유와 시장은 선험적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kwumin@hanmail.net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