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금융읽기] 게이트와 증시, 연두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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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안팎이 각종 게이트 파문으로 얼룩지고 있다.
이(李)게이트,윤(尹)게이트,미국의 엔론게이트….
게이트의 어원을 따져보면 ''크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연초 이후 어렵게 찾아온 증시의 상승세가 꺾이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벌써부터 이번 사건으로 경기가 다시 침체되는 ''게이트 리세션(Gate Recession)''을 거론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게이트가 증시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나 될까.
무엇보다 이번 게이트 파동은 내부자거래,주가조작 등 건전한 증시 발전을 위해 마련된 모든 법 규범을 위반했다고 볼 수 있다.
시각차가 있을 수 있겠으나 재테크의 관점에서 증시란 정보 편차에 의한 수익률 게임이 이뤄지는 대표적인 장소다.
다시 말해 동일한 투자풀에서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정보를 적게 갖고 있는 사람의 돈을 따는 시장이다.
이런 생리를 갖고 있는 시장에서 정책 결정의 핵심에 있는 사람들이 특정 기업을 편들고 정보를 전달하는 언론기관에 주식 로비가 이루어질 경우 증시의 공정한 질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주식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실현된 나라에서는 증시에 문제가 생기면 경기에도 커다란 충격을 준다.
특히 우리처럼 위기를 가져온 경제시스템을 치유하는 나라에서 가장 크게 우려되는 점은 추가 부실에 따른 후유증이다.
게이트 파문을 일으킨 대부분의 회사들이 로비를 통해 주가 띄우기에 성공하면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이 쉽게 이루워지기 때문이다. 물론 정책 당국자가 연루되다 보면 사후적으로 부실 처리도 어려워진다.
정책 당국과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짐에 따라 정책효과가 반감되는 것도 커다란 문제다.
현 상황은 정책 당국이 어떤 신호(signal)를 준다 하더라도 믿고 따라가기 힘든 지경이다.
오히려 정책 당국과 정책을 믿고 따르면 손해를 본다는 불신풍조 혹은 피해의식이 은밀하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당연하겠지만 한 나라의 경제가 이 지경에 이르면 경기 침체가 불가피해진다.
과거 각종 게이트와 조직폭력에 노출돼 있던 나라는 대부분 예외없이 경기 침체를 겪었다.
이탈리아 러시아 콜롬비아 등 중남미 국가가 그랬고 최근에는 일본의 장기 경기 침체를 ''야쿠자 리세션(Yakuza Recession)''이라고 부르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독일의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하는 부패지수와 경제성장률간의 상관관계를 구해보면 경제발전 단계가 높은 국가일수록 ''음(陰)의 상관계수값''이 높게 나와 투명성과 도덕성이 주가 상승과 경제 성장에 엄청난 장애가 된다는 점이 확인된다.
경제외적으로는 도덕성 상실이 가장 우려된다. 특히 우리의 경우 올해는 현 정부의 집권 마무리 시기인데다 양대 선거,월드컵 경기,아시안 게임 등으로 경제주체들의 욕구 분출이 심하고 사회적으로 들뜨기 쉬운 한해다.
이런 여건에서 최근처럼 게이트가 잇달아 발생하면 사회기강이 급속히 와해될 우려가 높다.
오늘 김대중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을 갖는다.
집권 마지막 해의 국정운영 방향을 밝히는 자리인 만큼 모든 분야에 걸쳐 실로 많은 목표와 과제,실천의지가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지금은 많은 말이 필요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현 시점에서 경기회복과 사회기강 확립을 위해서는 무너진 도덕성과 신뢰회복이 급선무다.
이번 연두 기자회견의 많은 내용이 바로 이 대목에 할애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