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08:13
수정2006.04.02 08:16
지난해의 정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불화와 반목,도덕적해이의 천민정치였다. 그래서 미증유의 9·11테러사태에 직면하면서도 온 국민을 애국심으로 똘똘 뭉치게 만든 미국 정치의 매직파워를 보면서 새해를 맞은 우리 마음은 허탈하다.
하기야 우리에게도 위기를 기회로 바꾼 그런 감동적인 경험이 없진 않았다.
6·25 이후 최대의 국난으로 일컬어지는 국가부도 위기 속에 IMF체제를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참회의 글들이 신문의 광고란마다 봇물을 이루는 등,우리 사회안에는 온통 ''돌아온 탕아''들로 가득찼고,속죄의 뜨거운 기운이 감돌았던 것이다.
그것은 가히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IMF 위기가 끝났다는 정부의 성급한 발표와 더불어 우리는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고,구태의연한 예전의 천민정치와 천민자본주의로 다시 돌아왔다. 마치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정상에 끌어올린 바윗덩어리는 순식간에 곤두박질쳐 바닥으로 내려온 것이다.
물론 금년이라고 해서 저급정치의 끝이 보일 것 같지는 않다.특히 예정돼 있는 두개의 선거는 모두 여야 간 사생결단의 의미를 갖는 선거인 만큼,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품위있는 정치가 정착될 가능성은 멀어 보인다. 여야를 막론하고 ''내 탓''보다는 ''네 탓''에 열을 올릴테고,자기자신이 한 짓은 ''로맨스''로,남이 한 짓은 ''불륜''으로 밀어붙일테니 그 파장의 강도는 더없이 살벌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해묵은 지역감정이 들춰 질테고,내로라 하는 사람들마다 줄서기에 바쁠 것이다.
또 각종 성명전이나 흑색선전은 얼마나 난무할 것인가.
그래도 정치를 포기할 수는 없다.
공기가 오염됐다고 하여 공기없이 살기를 염원할 수 없는 것처럼,우리도 정치를 혐오하고 포기하기보다 정화된 정치를 소망한다.
적어도 바른 정치에 대한 꿈을 갖는다.
현실이 한스럽다고 꿈까지 포기한다면 얼마나 구차한 삶이 되겠는가.
마침 올해는 꿈을 꾸기에 좋은 시간이다.
무슨 꿈을 꿀까.
그것은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정치다.
남보다 많이 가졌으면 많이 베풀어야 한다.
이것은 흔히 돈 많은 부유층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만이 아니다.
권력과 권위를 향유하고,정책결정권과 처벌권을 가진 공직자와 정치인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금과옥조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은 지도층 스스로 남보다 많은 희생과 봉사정신을 보일 때 비로소 가능하다.
로마의 귀족들이 평민에 비해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그 불평등한 특권을 오래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전쟁이 나면 누구보다도 먼저 목숨을 바침으로써 평민들보다 배이상의 희생을 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우리 정치인과 공직자들은 로마의 귀족과 비견될 수 있는가.
작년에는 무려 게이트가 네개나 터져 공분의 대상이 됐다.
그리고 이 게이트들은 ''판도라의 상자''로 계속 비리의 인물들을 내보내고 있다.
경제인들은 이윤과 영리를 추구하니까,부정을 저지르는 것이 이해되는 측면도 있지만,높은 도덕성을 시현해야 할 공직자들이 돈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고시과목에 윤리가 없어서일까.
태생적으로 사업을 해야 할 사람들이 운명의 장난으로 공직자가 되어서일까.
혹은 우리의 온정주의나 정(情)문화가 그 주범일까.
어쨌거나,우리 공직자의 청렴도가 황희 정승처럼 완벽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지라도 싱가포르 공무원정도의 수준은 돼야 하리라고 생각된다.
우리 천민정치에는 물론 정치인 개인의 탓이 아닌 구조적 탓도 있다.
하지만 정치인이나 공인이라면 구조를 탓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아보며 멸사봉공과 선공후사를 했는지를 반성하고 점검해 봐야 한다. 공익을 역설하며 근엄하기 짝이 없던 공직자나 정치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수뢰혐의로 검찰청에 불려가는 모습을 TV를 통해 보는 것은 엽기정치와 저급정치의 황당한 단면일지언정,바람직한 공직자상은 아니다.
금년에는 그런 엽기적인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이다.
물론 정치인과 공직자가 교도소 담장을 걷고 있는 아슬아슬한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하는 꿈은 가난한 서민이 대박이 터지기를 바라는 것처럼,사치스러운 것이라기보다는 평범한 시민이 순리정치를 고대하는 것처럼 소박한 것이다.
parkp@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