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권력형 로비 의혹사건들은 깊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나는 아니다"라며 강력하게 개입 혐의를 부인했던 검찰 총수와 청와대 고위인사들의 직·간접적인 연루 사실이 하나 둘씩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가 극에 달하는 모습이다. 이런 실망과 분노가 기득권층 전반에 대한 배신감으로 확대 재생산돼 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떨칠 수 없다. 최고 권부의 실세 권력자와 그 가족들이 ''조폭''으로 불리는 깡패 사업가와 결탁하고,살인범에다 카드 변조사기 전력까지 있는 사이비 벤처기업인과 놀아난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으니 권력층 전반에 배신감이 치미는 것은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 사회의 어두운 곳을 비추고 감시해야 할 일부 언론까지 가세해 한 몫을 챙기고,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진실을 호도하는데 앞장섰으니 국민들이 느낄 참담한 배신감과 좌절을 헤아리기 두려울 정도다. 필자 역시 언론계에 몸담고 있는 일원으로서 본의 아닌 죄책감과 짙은 자괴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형편이다. 언론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넘어 허탈감에 빠져 있을 독자와 국민들에게 구차하게 변명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 기회에 꼭 짚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일반화의 오류''에 관한 문제다. 특정 집단과 부류에 속한 몇몇 구성원의 행태에 근거해서 그 집단과 부류를 일괄해 규정하고 단정짓는 것이 일반화다. 우리 사회의 지난 역사는 그런 ''일반화 오류''가 빚은 많은 오해와 편견,그로 인해 불가피했던 대립과 불신,반목의 불행을 증언하고 있다. 우리 사회를 악취 가득 뒤덮고 있는 ''게이트'' 스캔들이 우려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일반화''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 때문이다. 더구나 윤태식씨의 사이비벤처 스캔들에 25명의 언론 종사자가 연루돼 있고,그중 상당수의 경제신문 간부와 기자들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진 마당이라 필자의 걱정은 더욱 크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의 최종 수사결과가 나와봐야 확실해지겠지만,한국경제신문은 이번 윤태식게이트를 비롯해 우리 사회를 들썩이고 있는 각종 스캔들에 단 한 명의 구성원도 연루되지 않았다. 응당 그래야 할,당연한 일을 무슨 훈장처럼 밝혀두지 않을 수 없는 오늘의 현실은 분명 고역이다. 도대체 한경은 어떻게 해서 허다한 스캔들로부터 ''초연''할 수 있었단 말인가. 많은 독자들로부터 적지 않게 이런 질문이 제기되고 있고,그에 대해 또한 답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도 괴롭기 그지 없다. 사실 그에 대한 답은 지극한 원론에 있을 뿐,무슨 ''비결''이 있을 수 없다. 공정과 객관주의를 취재와 기사작성의 당연한 원칙으로 알고,지키는 것이 한경 기자들의 전통으로 자리잡아온 때문이다. 취재 대상에 대한 ''불가근(不可近) 불가원(不可遠)''의 원칙에 충실한 나머지 한경 기자들은 때로 취재원들로부터 "차가우리만큼 객관적이다" "융통성이 없다"는 핀잔 아닌 핀잔을 수없이 들어야 했다. 공정과 신뢰를 먹고 살아야 할 언론으로서 당연한 금도(襟度)를 지켰다는 사실이 ''업적''으로 비쳐지는 현실은 더욱 서글프다. 그러나 참담한 자괴감을 무릅쓰고 독자 여러분께 부탁드리지 않을 수 없다. 몇몇의 물흐림을 갖고 그 집단 전체를 매도하는 ''일반화의 함정''에 함몰되지 말아달라고.일부에서 개탄하듯이 ''정치권도,검찰도,언론도'' 모두 썩었다면 우리 사회가 과연 제대로 지탱될 수 있었겠는가.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켜온 각계의 ''말없는 다수''가 싸잡혀서 매도당하는 일은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잇단 ''엽기적'' 게이트로 황폐화된 우리 사회가 상처를 추스르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도 서로에 대한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시점이지 않을까.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