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권지예씨(42)가 문학사상사 주관 제26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단편 ''뱀장어 스튜''. 지난해보다 2명 늘어난 7인 심사위원단(이어령 유재용 윤후명 김인환 권택영 권영민 조남현)이 1차 투표에서 만장일치로 뽑을 만큼 뛰어난 작품이다. 이 소설은 요리와 섹스를 접목시켜 인간관계의 근원을 되짚은 것. ''한 여인이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겪는 사랑과 상처,갈등을 이처럼 격렬하게 그려낸 작품은 보기 드물다''는 심사평과 함께 ''액자소설의 새로운 전형을 보였다''는 호평을 받았다. 지난해 7월 월간 ''현대문학''에 발표된 뒤에도 김윤식 교수의 ''격조 높으면서도 기법까지 신선한 수작''(문학사상 8월호)이라는 극찬으로 화제를 모았다. "피카소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죠.바람둥이였던 그가 마지막 여자에게 바친 작품이었다고 해요.입체적인 그의 그림을 소설에 원용한 것입니다" 소설 속에는 ''나''와 ''그녀''''여자''가 뒤섞여 나오지만 서로 한몸처럼 겹쳐져 있다. 작가인 화자의 개입,시점의 변화 등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일부 기법을 활용한 것. "리얼리즘 소설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인간 내면과 외면의 모습을 다양한 프리즘으로 비춰보고 싶었습니다" 8년간의 프랑스 체류 중에 자연스럽게 체감한 예술적 분위기 또한 그에게 큰 거름이 됐다. "가끔 소설은 그림을 통해 오곤 했는데 그 강렬하고 즉각적인 이미지가 곧 상상력의 뇌관을 자극시키고 폭발시켰지요" 그의 다른 작품 ''정육점 여자''도 베이컨의 그림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상자 속의 푸른 칼''도 프랑스화가 이브 클랭과 맞닿아 있고 ''투우'' 또한 민중미술 이야기를 배경으로 깔고 있다. 그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7대학에서 비교문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학중이던 1997년 계간문예지 ''라쁠륨''으로 등단했으며 99년 귀국한 이후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했다. 2000년 1월 논문을 마치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교통사고로 넉달쯤 병원에 누워 지냈는데 수상작은 이때 완성했다고 한다. 오랜 병원생활의 고통과 절망이 ''뱀장어 스튜''를 끓인 화력이었던 것이다. 병상에서의 또 다른 체험들은 중편 ''행복한 재앙''에 그려져 있다. 귀국한 지 2년 남짓,마흔 넘은 신인에게 모국에서의 글쓰기는 외로운 고투였다. 그러나 이제 그는 외롭지 않다. 원고청탁이 들어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던 시절 파리로 전화해 작품을 달라던 창작과비평사에서 곧 첫 작품집이 나온다. 게다가 눈물겨운 시간강사 보따리를 접고 3월부터는 동해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임용돼 문예창작론을 강의할 예정이다. 10월로 예정된 시상식에서는 3천만원의 수상고료도 받는다. 그야말로 경사가 겹쳤다. 한국 소설책도 귀하고 문학을 얘기할 사람도 없는 모국어의 오지에서 혼자 짝사랑하듯 습작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그는 "이번 수상이 외롭게 언어의 날을 벼리면서 글을 쓰는 신인들에게 큰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글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