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경기가 꿈틀되고 있다. 세계시장의 만성적 공급과잉에 9.11테러사태에 따른 경기침체까지 겹쳐 지난해 하반기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렸던 국내 유화업계가 올해들어 공장가동률이 올라가고 일부 품목 가격이 회복세로 돌아서는 등 서서히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모습이다. 30여개의 대형 석유화학 업체들이 몰려있는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지난 16일 밤 이곳에 있는 LG화학 PVC 출하장에는 야간임에도 불구하고 25t트럭 4∼5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PVC를 사가려는 업체들의 수송 차량들이다. LG화학 PVC공장 기술팀 목경수 부장은 "건축자재인 하이새시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면서 원료인 PVC의 공급물량이 달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업체들이 서로 먼저 원료를 받아가려고 해 간혹 마찰이 일어날 정도"라고 말했다. 최근 중국과 한국에서 건축붐이 일면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중국의 경우 PVC 수요가 지난해 3백만t에서 올해는 10% 이상 늘어난 3백40만t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LG화학은 현재 PVC 재고가 9천t(5일치)에 불과하다. 평소 1만5천t의 재고를 유지했으나 최근 수요가 늘면서 재고량이 급격히 줄었다. 지난해 말 t당 4백달러 안팎에서 거래되던 PVC 가격도 4백20달러선을 훌쩍 넘어섰다. 자동차 가전 컴퓨터의 외장재로 쓰이는 ABS도 중국내 수요가 늘어나면서 완전 회복세로 돌아섰다. 이동주 ABS생산2팀장은 "압출기에서 갓 생산된 ABS가 열이 채 식기도 전에 포장돼 출하되고 있다"며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5∼10% 매출액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폴리에틸렌 생산업체인 한화석유화학도 공장을 풀가동하면서도 과잉 재고를 완전 소진한 상태다. 지난해 가격 하락으로 감산까지 했던 L-LDPE(선형 저밀도 폴리에틸렌)는 중국의 관세인하 조치에 힘입어 1월 들어 주문량이 크게 늘었다. 김형준 기술관리팀장은 "통상 1월에는 구정 전 선적분에 대해 수주를 했으나 올해는 2월 말 선적분까지 수주가 이뤄지고 있다"며 "시장이 회복세로 들어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L-LDPE의 가격도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난해 12월 t당 4백20달러였으나 현재 4백60달러까지 올라섰다. 2월에는 5백달러선을 회복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김평득 LD생산팀장은 "일본 동남아 공장들이 올해 4월 정기 보수에 들어가 생산량이 줄어들면 가격 회복 속도는 훨씬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수=김태완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