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치인은 늘 그 중심에 서 있었다. ''게이트''로 불리는 비리사건들은 수개월간 의혹의 꼬리를 이어가다 결국 관련 기업인과 정치인들의 구속으로 막을 내리는게 이제는 공식화됐다. 정치인은 막대한 정치자금이 필요하고, 기업은 권력의 도움이 필요한 현실가 맞닥 뜨리면서 돈과 권력간의 ''비리고리''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결과다. 정치인들의 전화 한통화가 ''묻지마 보증'' ''묻지마 지원''의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도 여기서 비롯된다. 새해초 한국경제신문이 현대경제연구원과 함께 국민의식을 조사한 결과 ''국가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집단''으로 82.2%가 정치인을 꼽았다. 또 ''정경유착의 관행은 여전하다''는 답변이 60%를 훨씬 웃돌고 있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 관행화된 정경유착 =지난 91년 2월 국회 상공위원회 위원들이 뇌물외유 사건에 연루돼 무더기로 구속됐다. 10년이 지난 지금 ''윤태식 게이트''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가 뇌물외유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해당 의원들이 ''관행''이라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정권이 바뀌면 언제나 ''비리척결''을 외쳤으나, 정경유착이란 비리사슬은 좀체 끊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 양상은 특히 지난 13대 국회(88년) 이후 보다 뚜렷해지고 있다. 당시 구속된 14명의 현역 의원중 12명이 개인비리 혐의였고, 95년 가을에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비자금문제로 구속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김영삼 정부시절 비리사건의 하이라이트는 한보사건. 97년 2월 한보철강에 대한 특혜대출과 관련, 여야 의원 33명이 줄줄이 소환됐고, 권노갑 홍인길 정재철 황병태 의원 등 4명이 구속됐다. 한보사건에 관련됐던 당시 민자당 중진의원은 "내가 정치를 하면서 늘 교도소 담장 위를 걸어다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고 토로했다. 민국당 김윤환 대표는 "지금 같은 정치풍토에서 정치인은 누구나 죄인"이라고 실토했다. ◇ ''40당 30락''의 함정 =정치자금법상 국회의원이 후원회 등을 통해 1년간 거둬들일 수 있는 자금의 한도는 3억원이다. 국회의원선거 등 공직선거가 있는 해는 이 한도가 두배인 6억원까지 올라간다. 그러나 이는 실제의 지출규모를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지난 4.13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한 인사는 "조직관리비에만 5억원을 썼다"고 털어놨다. 여기에 사랑방좌담회, 각종 경조사, 홍보물 제작 등에 드는 비용을 덧붙일 경우 줄잡아도 20억원은 거뜬히 넘긴다는 계산이 나온다. 세간에선 ''40당 30락''이 정설로 굳어진지 오래다. "안걸리면 다행이고 걸려도 할수없다"는 ''미필적 고의''가 확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불법선거로 걸려든 사람이 당당히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후안무치''라고 일방적으로 매도할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나라당 한 중진은 "현 정치풍토와 정치자금법 등을 감안할 때 모든 의원들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구속된 의원은 희생양일수도 있다"고 강변했다. 민주당 김근태 상임고문도 "후원금 한도를 현실에 맞게 상향조정해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추구할건지 아니면 현행대로 혼란스런 상태로 둘건지 국민에게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음성적 권력형비리의 양산을 막기 위해 미국식 로비스트제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같은 맥락이다. 입법과정에서 발생하는 음성적인 로비를 양성화하는게 게이트정국을 그나마 줄일수 있다는 얘기다. 이재창.김병일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