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65년 두산이 코카콜라를 국내에 들여올 때 있었던 일화다. 당시 코카콜라의 국내 상륙을 놓고 찬반 논란이 뜨거웠다. 신문에는 부정적인 여론이 자주 노출됐다.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은 당시 한양식품 사장으로 이를 진두지휘하고 있던 터라 어려운 시기였다. 그런데 이때 큰 힘을 얻는 계기를 우연히 골프장에서 맞게 됐다고 박 회장은 회고했다. 박 회장은 어느 일요일에 군자동 서울CC로 라운드를 나갔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바로 뒤팀에서 라운드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는 티잉그라운드 옆에서 박 대통령을 기다렸다. 잠시 후 나온 박 대통령은 박 회장(당시 사장)을 보자 "박 사장,나 좀 봅시다"하고 불렀다. 준비된 만남도 아니고 너무 뜻밖이라 당황하면서 박 대통령을 만났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박 회장에게 "왜 코카콜라의 한국상륙을 놓고 말이 많느냐"고 물었다. 박 회장은 잘됐다싶어 "코카콜라는 세계적인 음료입니다.누가 들여와도 언젠가는 들어와야 하고,세계 어느나라에도 다 도입돼 있는 상황입니다.이는 반대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라고 상세하게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진지하게 듣더니 "알았다"라고 말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박 대통령에게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골프장에서 잡았고 두산은 이후 코카콜라를 국내에서 생산,판매할 수 있었다. 박 회장은 아랫사람에 대한 배려가 세심하기로 유명하다. 그의 지시로 춘천CC 80여명 전직원은 돌아가면서 매년 1주일 가량 일본으로 견문 유학을 다녀오곤 했다. 직원들에게 골프도 적극 권장했다. 골프를 통해 고객과 친분을 쌓으며 비즈니스도 하고 자신의 건강관리도 하도록 했다. 한번은 두산의 한 임원이 박 회장 앞조로 라운드를 나가게 됐다. 회장이 뒤에서 라운드를 하고 있으니 그 임원은 편할 리가 없었다. 왠지 뒤통수는 뜨거운 것 같고 혹시 회장이 따라오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샷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런데 홀을 거듭할수록 회장은 전혀 뒤따라오는 기미가 없었다. 그늘집에서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알아 보니 앞조가 신경쓰일까봐 천천히 플레이했다고 한다. 골프장 오너라고 자신만의 부킹시간을 결코 따로 두지 않았고 사전에 미리 예약을 해서 쳤다. 부킹시간에는 절대 늦는 법이 없었다. 박 회장은 40년 골프인생 동안 홀인원은 한번도 못하고 이글만 대여섯차례 기록했다. 근래 박 회장과 자주 라운드를 하는 동반자는 사돈지간인 김인기 전 공군참모총장을 비롯 최호중 전 부총리,김덕주 전 대법원장,김선길 전 해양수산부 장관,김현식 두산 상임고문 등이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