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08:40
수정2006.04.02 08:43
서울의 강남에서 불이 붙은 아파트값 파동이 강북으로,신도시로 번졌다.
왜 강남아파트값에 불이 붙었는가에 대해서는 진단도 처방도 제각각이다.
나는 이번 파동의 원인 중 상당부분이 그 동안 갈팡질팡해온 재건축정책 탓으로 보고 있다.
지금 ''재건축''은 강남아파트들의 가격표이고 주택공급의 키워드다.
그 동안 서울시가 허가해 줄듯말듯 머뭇거릴 때마다 아파트가격이 춤춰 왔고,계속 미적거리는 사이 이 지역의 주택공급에도 차질을 빚어왔다.
그래서 ''붕괴의 우려가 있다''는 판정을 받은 낡아빠진 10평짜리 아파트가 5억원을 호가하게 되었다.
대박이 터진 것이다.
그러자 강남의 아파트단지들이 저마다 대박을 꿈꾸며 재건축의 깃발을 꽂았고,이것이 바람이 흔들릴 때마다 역시 집값이 올랐다.
그러나 과연 재건축이 제대로 추진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로지 시장(市長) 맘에 달려 있다.
이것이 강남 주택시장의 현실이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바로 정부다.
도대체 용적률 90% 안팎으로 계획된 저밀도지구의 재건축을 2백80%의 단지로 탈바꿈하도록 허용해 준 마당에,현재 용적률 2백% 안팎의 아파트지구 재건축시 2백50%로 억누를 수 있겠는가? 여기서부터 당국은 첫 단추를 잘못 끼워 10년 가까이 갈팡질팡해 온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그 동안 주상복합이니,오피스텔이니,다가구주택이니 하며 용적률을 엿가락처럼 멋대로 허용해 주어서 작년 한햇동안 강남에서는 여윳돈을 노린 부동산잔치가 벌어졌다.
이제 뒤늦게 이런저런 이유로 주상복합과 오피스텔의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하니 금년은 작년 같지 않을 것이다.
선거가 다가오자 집값파동의 와중에도 도곡지구의 재건축 허가를 내주었다.
그 동안 미뤄왔던 수천가구의 전세이동 수요가 쏟아질 것이므로 적지 않은 전세파동이 뒤따를 것이다.
그리고 제비뽑기에서 떨어진 단지들은 3년 단위로 재건축사업이 늦어질 모양이니 집값 조정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한번 오른 집값은 떨어지기보다 밀어올리는 식으로 조정이 되게 마련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강남지역에 15년 이상된 소위 재건축대상 아파트는 30만호나 된다.
논바닥이 신도시로 탈바꿈한 지 고작 20여년 밖에 안된 강남바닥이 다시 온통 재건축 공사판으로 뒤덮일 판이다.
그리고 차츰 서울 변두리와 위성도시의 저층아파트들도 서울의 저밀도단지 재건축처럼 대박을 기대하며 고밀도로 변신하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재건축사업이 타당성이 있는가? 아파트가 오래되어 낡으면 자연 집값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때 잔존가치와 신축비를 합친 비용이 주변 아파트시세보다 적으면 재건축의 타당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강남에서는 이런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아파트가 낡아질수록 점점 값이 올라가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재건축 깃발을 꽂으면 돈이 되는데 누가 보수하고 리모델을 하겠는가?
런던의 강남이라고 할 웨스트엔드의 주택은 대부분 빅토리아시대에 지은 건물이다.
백년이 넘은 집도 많다.
그러나 우리는 20년밖에 안된 멀쩡한 건물들을 깨부수고 있다.
이제 정부는 재건축관련 정책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우선 도시계획의 틀을 만들고,지역별로 고밀도지구와 저밀도지구 등 용도계획을 분명히 하고,재건축시의 지구계획과 용적률을 미리 제시해 주어야 한다.
지나친 개발이익을 허용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주민들은 자기들의 아파트 재건축을 추진하는 것이 타당한지,언제쯤 될 것인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상당수의 재건축계획이 뜬구름같은 거품임이 드러날 것이다.
재건축승인이 선거용 카드일 수는 없다.
물론 안전하지 않은 건물은 헐고 다시 지어야 한다.
그러나 골조가 튼튼한 곳은 재건축보다는 리모델을 하거나 좀더 낡을 때까지 활용해야 한다.
재건축은 불량지구 재개발이 아니다.
강남의 아파트값은 ''재건축거품''에 싸여 있다.
10평짜리 아파트를 마술 부리듯 5억원짜리로 만들어 준 것은 정부의 재건축정책이다.
이제라도 도시를 장기적 안목에서 내다보고,적절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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