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양산" vs "업계 활성화" .. '벤처 확인제도' 찬반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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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기업 확인제도를 폐지해야한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일정한 기준을 마련해 특정기업이 벤처기업임을 확인하는 것은 시장논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늬만 벤처"인 벤처기업을 양산하는 이 제도 때문에 벤처를 둘러싼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도 한 이유다.
반면 벤처기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벤처기업 확인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부작용이 많은 만큼 제도 개선은 반드시 이뤄져야한다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실태=벤처기업 확인제도는 1998년 5월 도입됐다.
벤처기업 육성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게 정부의 목표였다.
벤처기업이 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
벤처캐피털이 총주식의 10% 이상을 투자한 기업이나 연구개발비가 매출액의 5% 이상인 기업 등은 자동으로 벤처기업으로 지정받을 수 있다.
또 중소기업진흥공단 기술신용보증기금 관광연구원 등 13개 기관 중 한 곳만 통과해도 중기청으로부터 벤처 확인을 받을 수 있다.
이때부터 벤처기업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중기청은 벤처기업 확인서를 찍어주기 바빴다.
기업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시행 첫해 2천42개사가 벤처기업으로 지정받았다.
2000년에 8천7백98개,지난해에는 1만1천3백92개로 늘어났다.
벽돌을 만들듯 ''벤처기업 찍어내기''를 한 셈이다.
◇무리한 벤처확인=벤처기업을 평가하는 13개 기관의 능력도 의심이 가는 부문이다.
지난해 7월 벤처확인 평가기관으로 지정된 관광연구원은 인터넷 여행업체 12개사를 벤처기업으로 확인해 줬다.
관광연구원은 IT(정보기술) 분야 전문가가 없어 인터넷 여행업체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 뒤 벤처기업 확인서를 발부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법적으로 벤처로 지정받을 수 없는 업종의 기업이 벤처기업으로 지정받는 사례가 허다하게 일어난다.
음식점 프랜차이즈가 주사업인데도 외식업 경영컨설팅으로 지난 2000년 벤처기업으로 지정받은 업체도 있다.
모 미용 관련 업체는 주력사업이 체인점 운영이지만 프랜차이즈 경영기술을 내세워 지난해 1월 벤처기업 리스트에 올랐다.
◇제도의 취약점=기업들이 벤처확인을 받으려고 하는 이유는 각종 혜택 때문.
소득세와 법인세가 감면되며 금융지원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는 벤처가 되는 순간부터 돈을 쉽게 모을 수 있는 환경 때문이었다는 게 벤처인들의 고백이다.
''벤처기업 확인=대박''의 꿈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제시한 일정한 기준에 맞으면 벤처로 확인해 준다는 자체가 시장 원리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기술신보 관계자는 "기업들이 벤처확인을 대단한 훈장으로 여긴다"며 "벤처 정책이 도마 위에 오른 만큼 벤처확인 제도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벤처기업을 만들 수 있는 공식기관만 1백58개에 이른다.
벤처확인 평가기관이 13개이며 벤처캐피털이 1백45개다.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현재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만 받으면 자동으로 벤처기업이 된다는 것은 재고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중기청은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아 벤처기업 확인을 받은 뒤 벤처캐피털이 바로 투자 지분을 회수 또는 매각해도 벤처기업 자격이 유지된다는 점을 노려 벤처기업이 된 사례가 많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을 정도다.
◇대책=벤처기업 확인 여부는 시장이 판단해야 한다는 게 대세다.
현재와 같은 정부의 역할은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벤처기업 구조조정을 전문으로 하는 앤비네트워크 이응진 사장(변호사)은 "미국 영국 일본 등에선 한국처럼 정부가 벤처를 확인해주는 제도가 없다"며 "정부는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연구 환경 마련 등 기업들이 일하기 편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만 하면된다"고 말했다.
그는 벤처캐피털 등 벤처 투자자들이 기업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체제로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벤처기업이 자생력을 가질 때까지 벤처 인증은 그대로 유지하고 개선 방안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벤처연구소 이장우 부소장(경북대 교수)은 "벤처확인제도가 국내 벤처붐에 일조했으며 단기적으로는 필요한 제도"라며 "벤처 과보호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형석 데이터리서치앤컴 대표는 "벤처로 지정받는 것보다 이를 유지하는 게 힘든 쪽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희정 사비즈 대표는 "기업의 업력 기술력 등에 차등을 두어 벤처기업 확인에 등급제를 부여하자"고 주장했다.
김문권·김미리 기자 m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