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증시 상황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용어중 하나가 "프로그램 매매"다. 23일 증시도 예외는 아니어서 프로그램 매매에 의해 장세가 한꺼번에 뒤바뀌는 상황이 벌어졌다. 약세로 출발했던 증시가 오전 10시께 대거 유입된 프로그램 매수세 덕분에 상승세로 돌아선 것.프로그램 매매를 움직이는 펀드매니저들이 북미지역의 반도체 BB율(수주대출하비율)이 개선됐다는 뉴스를 호재로 받아들인 때문이다.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거래소 전체 거래대금에서 프로그램 매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98년 1.72%에서 지난해에는 4.68%로 확대됐다. ◇''엔터키'' 한 번으로 20∼30개 종목을 동시 주문=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한꺼번에 대량 주문을 소화하는 것을 말한다. 증권거래소에서는 한 사람이 KOSPI 200 종목 중 15개 이상 종목을 동시에 거래하는 것을 프로그램 매매로 규정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천억원대의 주식을 거래하는 기관투자가들은 대량 거래에 따른 시간 절약을 위해 이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컴퓨터에 미리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펀드매니저가 ''엔터키''만 한 번 치면 20∼30개 종목에 대해 동시 주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매매는 일반적으로 차익거래와 비차익거래로 나뉜다. 차익거래는 현물과 선물의 가격 차이를 이용해 차익을 챙기는 매매다. 선물이 현물보다 비싼 ''콘탱고'' 상태에서는 비싼 선물을 팔고 싼 현물을 사는 대신 반대의 ''백워데이션'' 상태에서는 선물 매수,현물 매도하는 방식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프로그램 매매는 차익거래에 무게중심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선물과 무관한 비차익거래가 크게 늘고 있다. 비차익거래는 현물주식 20∼30개 종목을 한 번에 매수 또는 매도하는 것이다. 펀드매니저들은 증시 전망을 낙관적으로 볼 때는 손쉽게 ''시장을 산다''는 의미에서 프로그램 매수하고 반대로 증시 전망이 부정적일 때는 프로그램 매도를 통해 ''시장을 판다''고 한다. ◇프로그램 매매의 위력=프로그램 매매에 포함되는 종목들은 지수 영향력이 큰 시가총액 상위 종목인데다 매매 규모도 커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기관마다 프로그램 매매 패턴이 비슷해 한순간에 매물이 쏟아져 나올 경우 주가가 폭락할 수 있다. 증시에는 이를 폭포수에 빗대 ''캐스케이드'' 효과라고 부른다. 지난 87년 10월 뉴욕 증시의 주가가 대폭락한 ''블랙 먼데이'' 때도 프로그램 매도가 원인 제공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있다. 또 선물 만기일에는 매수차익 잔고 청산 등에 따라 시장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한국투신운용 관계자는 "프로그램 매매는 기관의 전유물로 개인이 특별히 대응할 방법은 없다"면서도 "기관의 비차익거래 규모나 선물과 현물의 괴리(베이시스) 추이 등을 살펴보면 향후 장세를 전망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성민 기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