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26일 서울 힐튼호텔. 합병 국민은행장 선정을 위한 위원회가 비밀리에 열렸다. 후보는 당시 김정태 주택은행장과 김상훈 국민은행장. 6명의 선정위원들간 이견은 전혀 좁혀지지 않았고 논의는 벌써 2박3일을 넘겼다. 밤을 새운 6차례의 모의투표에서도 결론이 나지 않았던 후보선정은 한 순간에 결판이 났다. 당시 정부측을 대표했던 최범수 합병추진위원회 간사가 중립을 지키겠다는 방침을 깨고 김정태 후보의 손을 들어 준 것. "도대체 정부의 의중은 누구냐"는 골드만삭스 등 외국계 대주주의 질문에 대해 답변했을 뿐이라는 변명과 함께. 이 과정이 보여주듯 합병은행장 선정에서는 ''정부의 의중''이 결정적인 요소였다. 금융계에서는 개입하지 않겠다고 뒷전에 물러나 있던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선정위원들과 수시로 접촉한 결과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보다 앞선 작년 2월27일. 우리금융지주회사의 CEO 인선위원회는 이경재 당시 기업은행장과 윤병철 하나은행 회장을 CEO 후보로 추천했다. 당시 인선위원회가 1순위로 거론했던 후보는 이경재 행장. 그러나 다음날 금융감독위원회는 윤병철 회장을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순수 민간인 출신을 선정 기준으로 했다"는게 정부측 공식설명.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우리금융은 PK(부산.경남) 몫''이라는 정치적 고려가 더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작년 5월 이경재 당시 기업은행장의 후임을 정할 때도 비슷한 광경이 벌어졌다. 하마평에 오른 인물은 금감원의 김종창(경북예천출신) 정기홍(전남출신) 두 부원장. 처음에는 호각지세(互角之勢)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론은 의외로 간단했다. ''호남출신 은행장이 너무 많아 더이상은 곤란하다''는 가이드라인이 내려오면서 김 부원장이 낙점됐다. 따지고 보면 현 시중은행중 정부 입김에서 자유로운 은행은 별로 없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은행에 대규모 공적자금을 쏟아붓는 과정에서 대주주 또는 주요 주주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이러니 정부가 대주주로서 은행장 선임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됐다. 일각에서 ''관치금융'' ''낙하산 인사''라고 시비를 걸라치면 "주주권 행사도 못하나"라는 식의 반론이 되돌아오곤 한다. 최근 차기 조흥은행장 자리를 두고 금감원 고위인사가 다시 물망에 오르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정부의 주주권 행사가 ''비즈니스적 동기''보다는 ''정치적 동기''에 좌우된다는 점이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은 ''수익성을 중시하는 주식회사''로 탈바꿈하고 있다. 따라서 은행장도 이런 화두에 걸맞은 사람이 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정치적인 고려나 관료들의 인사운용 차원에서 은행장이 선임된다면 은행 경쟁력은 후퇴할 수 밖에 없다. ''낙하산 은행장''의 경우 내부조직을 파악하고 조직을 장악하는데 1년여씩 까먹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은행은 수익성 위주로 탈바꿈하라고 강요하면서 은행장자리는 여전히 정부의 구미에 맞는 사람들로 채우려는 구시대적 발상은 곤란하다는 얘기다. 김준현 기자 kim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