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워싱턴DC 국회의사당 남쪽에 있는 레이번 하원건물 2322호실. 에너지중개회사인 엔론사태를 조사하기 위한 첫 청문회가 열린 이곳엔 정치·경제적 파장이 유례없이 큰 탓에 시작하기 전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참고인석과 기자석은 움직일 만한 공간도 없이 꽉 찼다. 상원에서도 같은 시간 아더 레빗 전증권거래위원장을 출석시켜 청문회를 시작했지만,엔론의 회계감사를 맡았던 아더 앤더슨의 고위 관계자들이 소환된 에너지 상무소위원회가 더 주목을 받았다. 엔론의 정치자금 제공과 함께 최대 관심사로 부상한 아더 앤더슨의 서류파기를 둘러싼 진상이 무엇보다 궁금했기 때문이다. 오전 9시30분 짐 그린우드(공화당) 소위원장의 개회선언으로 진상 파헤치기가 시작됐다. 증인으로 나온 아더 앤더슨의 템플 변호사 및 도르시 바스킨 이사,파트너인 앤드루의 입이 열릴 때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우리는 서류파기 사실을 뒤늦게야 알았습니다. 증권거래위원회가 회계조작 여부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던 작년 10월22일 전후에는 서류파기를 상상도 못했습니다. 당시 엔론사의 회계감사를 관장했던 파트너인 데이비드 던컨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이뤄진 부적절한 처사였습니다. 내부조사가 끝나는 대로 진상을 자세하게 보고하겠습니다" 서류파기 시점과 주동자를 찾아내기 위한 질문에 앤더슨 간부들은 ''모르쇠''와 ''던컨의 잘못''으로 피해 나갔다. 던컨 회계사는 서류파기가 자신에게 화살을 돌린 앤더슨의 변호사인 템플의 조언에 따라 이뤄졌다고 폭로한 후 해고당한 인물. 이날 청문회에 출석했던 던컨은 증언을 거부하고 퇴장해버렸고,남아있던 앤더슨 간부들은 던컨을 희생양으로 몰고가는 듯한 분위기였다. 엔론 청문회는 앞으로 9차례 열릴 예정이다. 아더 앤더슨의 서류파기는 물론 부시 행정부와 의원들의 엔론 봐주기,정치자금 관련규정의 문제점,엔론 경영진들의 비도덕적인 행태,종업원들의 피해 등 수많은 숙제를 풀어가야 한다. 아무런 수확도 거두지 못한 이날의 첫 청문회는 엔론 파헤치기 작업이 험로임을 예고하는 듯했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