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예정된 잇따른 선거로 인해 실물경제의 흐름이 왜곡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경제계의 목소리가 높다. 재계가 정치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경제정책의 일관성을 정부에 주문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은 ''정치를 바꿔야 경제가 산다'' 시리즈 2부(대선주자 인터뷰)를 마감하면서 민간경제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손병두 부회장을 만나 이 문제에 대한 산업계 의견과 대응방안을 들어봤다. 손 부회장도 "경제문제가 정치논리에 흔들려선 안된다"고 수차 강조했다. [ 대담 = 이봉구 < 부국장대우 산업부장 > ] ----------------------------------------------------------------- -기업 경영자들로부터 올해 실시될 대선이나 자치단체 선거 등이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는 실물경제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란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만. "무엇보다 경제현안이 정치적 논리에 의해 왜곡되고 표류해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양대 선거로 인한 정책혼선의 차단에 대선주자들도 큰 관심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각종 이익집단의 목소리가 높아지다 보면 표를 의식한 대선주자들의 선심성 공약이 나올 우려가 높습니다. 덩달아 정부정책이 이같은 분위기에 휩쓸릴 수도 있구요. 아르헨티나도 포퓰리즘(인기주의) 때문에 어려워진 것 아니겠습니까. 포퓰리즘으로 흘러선 안됩니다" -정치인으로선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터인데 인기영합주의를 방지하자면 어찌해야 할까요. "특히 금년과 내년은 어떤 좌표를 설정하느냐 하는 점이 중요합니다. 국가의 리더가 바뀌는 해이기 때문이죠. 경제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잘 구분하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따져서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저희 전경련에서도 경제정책 과제와 비전을 발굴해 대선주자들에게 적극 건의할 생각입니다. 공약에 반영될 수 있도록 말이죠" -정부에서 우선순위를 둬야 할 정책이라면 역시 기업체질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제고하는 방안이 아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요즘은 세계적으로도 국가경쟁력을 높이는데 지도자들이 앞장서고 있는 것이 공통적인 현상입니다. 국가경쟁력은 결국 기업의 경쟁력에서 나오는 것이죠. 그래서 세계적인 지도자들이 ''친(親)시장, 친(親)기업'' 정책을 펴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마저도 지금 엄청난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보다 훨씬 더 시장주의적인 조치도 내놓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개혁방안도 이런 쪽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입니다" -해외 투자자들이나 신용평가기관들은 우리나라 경제를 평가할 때 구조조정 실적을 중요한 판단잣대로 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업의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가 경제회복의 관건이기 때문이겠죠. 외환위기 이후 우리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위해 뼈를 깎는 자세로 대처해 왔고 상당한 성과도 거뒀습니다. 그러나 정부에서 강제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한데다 기업여건을 감안하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기준을 적용하다보니 부작용이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대표적 예가 ''부채비율 2백%'' 규제입니다. 기업이나 업종마다 특성이 다르고, 저마다 처해진 형편이 다른데 획일적인 기준을 내세워 통제하니까 투자가 위축되는 등의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글로벌 스탠더드(세계표준)에도 맞지 않는 제도입니다" -구조조정을 보다 원활히 추진토록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구조조정과 관련해 가장 큰 과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인력이나 임금의 유연성을 바탕으로 기업.공공.금융부문의 구조조정을 신속히 추진해야 경쟁력이 높아지고 보다 안정적인 고용을 창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산업현장의 불법분규에 대해선 법과 원칙에 따른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한국이 전반적으로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대해 정부는 기업들이 투명경영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소속국가가 신용등급 A를 받지 못하면 아무리 우량기업이라도 A등급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죠. 정부가 국가신용도를 높이는데 더욱 힘을 쏟아야 합니다" -''투명경영''이란 말씀을 하셨습니다만 최근에는 재계가 발표한 윤리경영이 큰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지난 25일부터는 부패방지법이 발효되고 부패방지위원회도 본격 출범하게 됐습니다. 윤리경영 정착을 위한 재계의 노력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전경련은 작년에 기업윤리임원협의회를 만들었고 기업윤리지원센터도 발족시켰습니다. 기업윤리연구회도 만들었고요. 올해는 보다 구체적으로 윤리경영 실천에 주력하고자 합니다. 먼저 기업윤리헌장 제정확대를 유도할 생각입니다. 연초부터 회원사에 대해 협조서한과 표준모델을 발송했습니다. 지난해 45.2% 수준인 윤리헌장 보유율을 올 상반기중 60%선으로 끌어올릴 것입니다. 윤리담당임원이 선임돼 있는 곳도 지금은 32개사이지만 조만간 이를 1백개사로 늘릴 생각이고요. 미국 존슨앤존슨 등의 윤리경영실천 모범기업들의 사례도 소개해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하고 국제표준기구(ISO)의 기업윤리 국제규격 제정방침에도 적극 대응할 것입니다" -정부는 오는 7월부터 주5일 근무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근로자들은 휴일 확대를 원하고 있지만 재계에서는 아직 시기가 이르다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주5일근무제를 반대하는 논리적 근거는 어떤 것입니까. "우리의 경제상황과 국민소득 수준을 감안할 때 시기상조라는 것입니다. 이를 시행하게 되면 법정근로시간이 단축되게 됩니다. 선진국들은 대부분 1인당 국민소득이 2만∼3만달러일 때 법정근로시간을 단축했는데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1만달러에도 채 미치지 못합니다. 근로시간을 단축하기에 앞서 연월차제도부터 개선해야 합니다. 노동계에서는 법정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기업의 임금인상분이 생산성 향상을 통해 충분히 상쇄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시설투자 확대와 인력감축이 전제돼야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기업의 시설투자 여력이 취약한 지금 상황에서는 노동비용 증가와 경쟁력 약화만 초래할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아시아경제의 블랙홀''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해외투자를 독식하는 중국의 임금이 우리의 16분의1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지요. 경제개혁은 목표가 아니라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증권관련 집단소송 법안이 오는 4월1일 시행을 목표로 국회 법사위에 계류중인 상황입니다만. "우리나라 민사소송법 체계상 문제가 있고 장점보다 부작용이 많은 제도여서 절대 도입을 서둘러선 안됩니다.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지난 90년대에 두 번에 걸친 소송요건 강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송남발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얼마전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 재계회의에서 만난 로드릭 USX 전 회장도 집단소송제를 ''골치아프고 해로운 제도''라고 하더군요. 소송이 제기됐다는 사실만으로 주가가 30%씩 떨어지곤 합니다. 미국에서도 이런 소송은 대개 화해로 끝나는데 소액투자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그야말로 소액에 그칩니다. 소송대리인이나 로펌의 배만 불려주는 결과가 되곤 하지요. 일본에서도 지난해 사법개혁심의위원회에서 고이즈미 총리에게 도입 유보를 건의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삼성전자 임원들에 대한 거액의 배상판결로 주주대표소송제 또한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기업경영활동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요. "기본적으로 경영판단 행위를 법원의 심판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못합니다. 이사회를 몇시간 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경영자의 통찰력을 존중해 줘야 합니다. 실패한 경영판단이라 해서 법적 책임을 묻는다면 경영위축이 불가피하고 사외이사 선임에도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에도 경영판단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원칙이 확립돼 있고 그런 판례도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의 대표소송에선 무제한의 배상책임을 인정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이뤄져야 합니다. 일본도 최근 상법을 개정해 임원의 배상책임 한도를 규정해 놓았습니다. 대표이사는 6년, 사내이사는 4년, 사외이사는 2년치 보수로 돼 있지요" -대선 주자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들려주시죠. "돈 안드는 선거를 치러야 합니다. 그래야 선거과정의 투명성이 높아지고 국민경제에 대한 부담도 줄일 수 있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 등 합법적이고 책임있는 기관에 의해 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선거 감시가 이뤄지도록 대선주자들이 적극 협조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선거과정에서 표를 의식해 무분별하게 반기업 정서나 반시장적 여론을 확산시키는 행위도 지양해야 합니다. 기업경영을 잘 하는 사람,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 국가에 기여하는 사람이 존경을 받고 이들이 더 신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합니다" 정리=손희식 기자 hssohn@hankyung.com ----------------------------------------------------------------- < 기업 윤리헌장 > 전경련은 투명경영을 실현하는 한편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상을 만들기 위해 기업윤리헌장을 제정해 실천을 권장하고 있다. 다음은 기업 윤리헌장 내용. -우리 기업은 기업시민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한다. -우리 기업은 창의와 혁신을 통해 정당한 이윤을 창출한다. -우리 기업은 투명경영을 하는데 노력을 다한다. -우리 기업은 정치권 및 정부와 건전하고 투명한 관계를 유置磯? -우리 기업은 전문경영인의 육성을 위해 노력한다. -우리 기업은 기업 상호간에 공정한 경쟁을 한다. -우리 기업은 대.중소기업간 협력을 발전시켜 나간다. -우리 기업은 소비자와 고객의 권익증진에 힘쓴다. -우리 기업은 모든 기업구성원의 이익을 향상시킨다. -우리 기업은 환경친화적 경영을 지향한다. -우리 기업은 지역사회의 발전에 기여한다. -해외진출기업은 현지국의 선량한 기업시민으로서 현지국의 법률을 준수하고 현지국의 문화와 거래관행을 존중한다. -우리 기업은 이 헌장을 준수하고 실천이 가시화되도록 공동 협력하여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기업을 만드는데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