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C의 생산현장 직원들은 정기적으로 자신이 직접 가동하고 있는 설비의 그림을 그린다. 이른바 ''마이 머신(My Machine)'' 그리기 경진대회다. 기계의 원리를 이해함으로써 기계에 이상 징후가 발생할 경우 스스로 응급조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기 위한 행사다. 이인희 KEC 사장은 "직원들의 철저한 품질관리 능력 덕분에 세계에서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 전자업체들의 신뢰를 끌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반도체 업계는 최악의 불황기를 보냈다. KEC가 예년 수준의 경영실적을 올릴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매출은 5천6백억원, 당기순익은 3백50억원 수준을 달성할 것이다(이 회사는 2001년 3월말 기준으로 매출액 5천9백44억원, 당기순익 3백61억을 기록했다). 극심한 IT(정보기술) 경기의 불황을 감안하면 대단히 선방한 것이다. 반면 최대 경쟁기업인 일본 롬(ROHM)사는 이익이 70%이상 줄었고 미국의 온세미(ONSEMI)는 적자로 전환했다. KEC가 지난해 기대 이상의 경영실적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경기변동에 영향을 적게 받는 비메모리 반도체 중심으로 사업구조가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D램과 같은 메모리 반도체보다는 상대적으로 가격하락 폭이 작었다. 부채비율 66.0%, 자기자본비율 60.2% 등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확보한 것도 도움이 됐다" -주력제품인 소신호용 소자(SSTR)는 본질적으로 음성이나 영상 신호를 단순히 증폭시키는 역할에 그친다는 점에서 첨단 하이테크 제품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는가. "하이테크 제품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대표적인 메모리 반도체인 SD램 역시 수동(Passive) 부품이다. 게다가 매년 천문학적인 투자비가 들어가는 장치산업이다. 어떠한 장비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제품의 질과 양이 달라진다. 이에 비해 KEC의 경우 15년 이상된 생산설비의 영업이익률이 가장 높다. 영업이익률이 20%를 훨씬 넘을 정도다. 생산설비에 대한 감가상각 처리가 끝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SSTR는 최근 전자기기의 디지털화 추세에 따라 수요가 안정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KEC는 SSTR의 향후 2~3년간 매출이 연평균 15%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05년에는 5천억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삼성이나 LG전자 등 국내기업은 물론 도시바나 페어차일드 등 세계적인 전자업체들이 이 분야에서 손을 뗀지 오래다. 시장 상황도 KEC에게 유리하다" -올해 중점을 두고 추진할 사업분야는 무엇인가. "주력인 반도체와 신규사업인 고주파부품 및 자동차용 전자부품(전장) 사업을 중심으로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매출은 15% 신장을 계획하고 있다. 반도체는 초절전형 소자를 중심으로 디지털 전자제품용 수요에 적극 대응해 나갈 방침이다. 통신기기 사업은 고주파 설계기술을 활용, IMT-2000용 단말기에 사용될 필터 칩형 안테나 듀플렉서 등 핵심부품을 개발할 계획이다. 유망사업으로 떠오르는 전장사업은 자동차 엔진용 얼터네이터 다이오드, 자동차용 흡입공기압(MAP), 온도 및 가스 측정 등 각종 정밀센서를 단계적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KEC의 장기 경영비전은 무엇인가. "2005년까지 매출 1조원의 세계 초일류 전자부품회사가 되는 것이다. 현재 중국 등지에 4개 생산법인과 5개의 판매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효율적이고 경쟁력 있는 제조망과 판매망을 확보해 나감으로써 성장의 기반을 넓히고 있다. 또 첨단 기술확보를 위해 매년 최소한 4백억원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할 계획이다. 특히 반도체 부문은 현재 매출액의 2.5% 수준에서 5%로 늘릴 것이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