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는 바이오혁명] 게놈지도, 생명의 신비 밝힐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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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게놈지도를 완성한 것은 인류 과학사에 큰 획을 긋는 것으로 아폴로의 달착륙에 비견될 만한 일이다"
인간 유전자구조를 해독하는 게놈프로젝트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참가했던 박홍석 박사(생명공학연구원.41)의 말이다.
게놈지도 완성은 인간의 탄생과 죽음, 질병의 원인, 노화 등 그동안 인간이 풀수 없었던 생명의 신비를 밝혀내는데 열쇠를 제공했다.
한마디로 신의 영역으로 인식돼 왔던 생명의 근원을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게놈연구는 어디까지 =인간 유전자가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31억쌍의 염기서열을 해독하기 위한 작업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돼 왔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의 내로라하는 수많은 과학자들과 연구기관들이 머리를 맛대고 연구한 이 작업이 비로소 결실을 맺게 된 것은 지난해 2월부터다.
국제 컨소시엄인 인간게놈프로젝트(HGP)와 미국 생명공학 기업인 셀레라제노믹스가 공동으로 게놈지도를 완성, 공개한 것이다.
셀레라는 인간이 지닌 31억쌍의 염기서열중 95%를 99.96%의 정밀도로 해독, 유전자의 총수가 2만6천3백83~3만9천1백14개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게놈 해독작업이 마무리된 것은 인간 유전자의 기능과 작용을 제대로 알아낼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각각 염기서열의 생물학적 기능을 밝혀냄으로써 암과 치매 등 난치병을 근원적으로 예방 치료하는 길이 열렸다는 얘기다.
게놈연구는 이후에도 속속 새로운 성과를 쏟아냈다.
올들어 지난 4일에는 국내의 생명공학연구원과 일본 이화학연구소,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등이 공동으로 인간과 가장 유사한 것으로 알려진 침팬지의 게놈지도를 완성했다.
이에 따라 침팬지 연구를 통해 에이즈나 암, 치매, 알츠하이머, 다운증후군, 백혈병, 정신질환 등 인간의 난치성 질병을 근본부터 규명해낼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쥐나 돼지 등을 이용한 게놈연구가 활발했지만 이들 연구결과로는 인간의 질병을 효과적으로 분석해내기 어려웠다.
포스트게놈 연구 시작 =게놈지도 완성으로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게놈지도는 단지 생명의 신비를 푸는 열쇠에 해당한다.
해독한 게놈지도를 활용, 실제 유전자에 관한 정보를 얻어내는 작업을 거쳐야 인간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본격적으로 열리게 된다.
포스트게놈 연구도 이 때문에 필요하다.
포스트게놈 연구의 대표적인 것중의 하나가 인간프로테옴프로젝트(HPP)이다.
프로테옴(proteom)이란 단백질(protein)과 게놈(genome)을 합성해 만든 신조어.
단백질체의 발생과정과 발현빈도, 분포, 기능 등을 알아내고 각 단백질이 외부환경에 어떻게 반응하고 상호 작용하는지를 규명하는 연구기술이다.
프로테옴이 유전자의 기능분석과 함께 포스트게놈의 가장 중요한 연구과제로 떠오르는 이유는 단백질을 분석하지 않고는 질병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유전체사업단 유향숙 단장은 "게놈지도가 질병의 예방과 치료 등 구체적인 의학적인 성과로 이어지려면 프로테옴 연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HPP는 이미 지난해부터 출발했다.
게놈지도를 만들어낸 셀레라지노믹스와 하버드대, 도쿄대, 스위스제약그룹 등 10개국의 주요 생명공학 연구기관들은 HPP의 수행을 위해 지난해 2월8일 인간프로테옴컨소시엄(HUPO)을 결성했다.
국내 연구수준 =게놈연구 전반에서는 선진국과 격차가 있지만 국내 연구진도 미래 생명과학의 핵심으로 등장한 게놈분석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특히 한국인의 유전적 특성을 규명하고 대표적인 질환인 위암과 간암 등의 치료제를 개발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4백여명의 생명과학자들이 대규모로 참여한 유전체사업단이 국내 게놈연구를 총지휘하고 있다.
사업단은 그동안 한국인 위암의 원인균으로 지목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1백% 해독하는 국제적 연구성과를 거뒀으며 위암, 간암 환자들에서 얻은 1만4천개 유전자의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했다.
바이오벤처기업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마크로젠은 미국 등에서 발표된 인간게놈 연구성과를 십분 활용해 지난해 6월 한국인 게놈지도 초안을 완성, 발표했다.
이번 연구결과 같은 질병이라도 개인마다 염기쌍 몇 개의 차이로 질병 유전자의 발생 형태가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개인별 차이는 인종이나 민족에 따라 유사하다는 것도 드러났다.
마크로젠이 한국인 게놈지도 초안을 완성함에 따라 한국인이 잘 걸리는 암과 고혈압, 당뇨, 천식, 골다공증, 관절염, 면역 질환 등 7대 질환을 정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