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진행중인 일제 징용피해소송의 피고인 일본 기업들이 소송진행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캘리포니아주 제2항소법원 3인 재판부는 지난 23일 다이헤이요 시멘트의 요청을 받아들여 징용피해자 정재원(80.로스앤젤레스 거주)씨측에 대해 자료수집 및 증언확보 등의 모든 재판준비과정을 잠정중단하라고 명령했다. 정씨를 강제노동시킨 오노다 시멘트의 후신인 다이헤이요 시멘트는 작년 두번씩이나 소송기각요청이 LA민사지법의 피터 릭트만 판사에 의해 거부되자 지난 14일 항소했다. 정씨는 지난 99년 10월 미주 한인으로서는 처음 소송을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정씨 소송과는 별도로 작년 2월 한인 징용피해자 8명이 낸 집단소송의 피고인 미쓰비시와 미쓰이 등 일기업측 변호인들이 가세, 다이헤이요 입장을옹호했으며 미 정부도 일측을 두둔하는 종전 입장을 되풀이했다. 신혜원 변호사는 27일 "일 기업들이 재판 진행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미 정부도 일측 입장을 지지하기 위해 적극 개입하고 있다"며 "미쓰비시 변호인 등이 가세한 것은 정씨 소송기각여부가 자신들의 소송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릭트만 판사는 작년 9월과 11월 캘리포니아주법(일본강제징용손해배상특례법)이미 연방정부의 정치외교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없으며 손해배상청구 시효연장은주법원의 고유권한이라는 등의 이유로 소송기각요청을 거부하고 다이헤이요에 대해원고측의 자료요청 등 재판준비절차에 적극 협조하도록 명령했다. 그럼에도 일측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미일강화조약과 65년 한일기본협정에 따라 배상문제가 해결됐다는 종전 주장을 굽히지 않은 채 항소, 이번에 재판준비 정지명령을 받아냈다. 주항소법원은 오는 4월30일 청문회를 열어 릭트만 판사의 소송기각요청 거부판결이 정당한지 여부를 가린다. 정당하다는 판결이 나올 경우 증거수집 등 재판준비절차는 계속 되고 릭크만 판사는 재판날짜를 정하게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소송은 기각된다. 한태호 변호사는 지난해 샌프란시스코 연방항소법원이 보험회사로 하여금 나치의 유대인집단학살(홀로코스트) 희생자에 대한 자료를 공표하도록 한 주법이 위헌이아니라고 판결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징용피해배상 청구시효를 2010년까지 연장한주법에 근거, 기각요청을 거부한 릭트만 판사의 판결을 옹호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씨 변호인단은 소송이 기각될 경우 다른 징용 및 위안부 소송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주대법원 상고 등 다양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한편 재미일제징용피해자 모임인 이차대전배상청구연합회(KAWA)의 이준영 상임고문(대외홍보담당)은 "이번 명령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정씨가 배상을 받을 수있도록 필요한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씨는 "자신들의 잘못을 부인하는 것이 일본 정부와 기업의 본성"이라며 "그들은 더이상 부인하기 어려울 때 소송진행과 재판을 계속 지연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권오연 특파원 coowon@a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