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제지업체인 한솔의 이인희 고문(74)은 한국 여성골프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이 고문이 골프를 처음 접한 것은 40년 전인 지난 1962년. 부친인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의 권유로 시작하게 됐다. 이 회장은 당시 "여자도 집안살림이 안정되면 사회활동에도 참여하고 운동도 해야 한다"며 골프를 권했다. 하지만 그때는 남자골퍼도 귀하던 시절인지라 이 고문은 주로 이 회장의 ''수요회'' 멤버들과 라운드했다. 수요회에는 당대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포함돼 있었다. 이 고문은 이러한 명사들과의 라운드를 통해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잘 치는 게 아니라 매너와 에티켓이라는 것을 배웠다. 고 장기영 한국일보 회장과의 라운드 때 있었던 일이다. 호탕한 성격이었던 장 회장은 자신이 4번아이언을 잘 친다고 자랑을 했다. 그래서 하루는 골프볼 한 다스를 걸고 이 고문과 겨뤘는데 미스샷을 내는 바람에 이 고문에게 패했다. 장 회장은 라운드 후 이 고문이 어떤 볼을 좋아하는지 비서를 시켜 확인한 다음 볼 한 다스를 보내줬다고 한다. 비록 내기에 졌지만 상대방에 대해 세심하게 배려하는 것을 보고 이 고문은 상당히 감명을 받았다. 이 고문은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과도 가끔 라운드를 했다. 정 회장은 볼이 잘 맞거나 기분이 좋으면 휘파람으로 ''매기의 추억''을 잘 불렀다고 한다. 이 고문은 특히 정 회장이 라운드를 나올 때 바지를 바늘로 꿰매 늘려 입고 나오는 것을 보고 그 청빈함에 놀랐다고 한다. 이 회장은 장녀인 이 고문을 애지중지했다. 맏딸과 함께 라운드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이 고문은 "라운드할 때마다 아버지한테서 회사를 경영하는 기법이나 노하우를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이 고문은 그린에 오르면 신중하게 라인을 체크한 뒤 과감하고 공격적으로 퍼팅하는 것으로 정평나 있다. 이 고문의 이러한 골프스타일은 경영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무슨 일을 추진할 때 주도면밀하게 조사·연구를 거듭하고 한 번 결정하면 대단한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밀어붙인다. 이 고문은 골프는 진실과 함께 성실을 요구한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자주 말한다. 1년에 한 번씩 그룹 전계열사의 임원들을 초청해서 친선골프대회를 갖는데 실력이 향상된 임원들을 칭찬한다. 이 고문은 "골프는 연습한 만큼,노력한 만큼 거두는 운동이며 기업경영도 이와 똑같다"고 강조한다. 이 고문은 구력 40년간 다섯번의 홀인원을 기록했다. 1974년 안양CC에서 첫 홀인원을 기록한 이래 87년 제일CC,89년 하와이의 와이알래CC(미 PGA투어 소니오픈이 열리는 곳),그리고 89년 동래CC에서 홀인원을 낚았다. 최근에는 지난 99년 이 고문이 가장 아끼는 오크밸리GC 파인코스 6번홀에서 홀인원의 행운을 잡았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