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슨 부도] '벤처연방' 과욕이 침몰 불렀다 .. 왜 무너졌나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벤처 신화가 무너졌다''
한국 벤처기업 1호로 한때 ''벤처 모범''으로 불렸던 메디슨이 자금난에 몰린 끝에 29일 좌초했다.
속속 도래한 어음을 막지 못하고 부도를 낸 것이다.
메디슨의 부도는 벤처사업가의 대명사였던 이민화 회장(현직은 메디슨 이사회 의장)의 몰락을 의미한다.
◇이 회장의 신화=이 회장은 기술력 하나만 가지고 10여년간 ''벤처제국''을 건설하면서 젊은 벤처 지망생들의 우상으로 여겨졌던 인물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 회장의 과욕이 결국 메디슨호의 침몰을 몰고온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이 회장은 지난해 10월 메디슨에 대한 경영 실패를 자인한 듯 대표이사직을 사퇴했다.
이 회장은 한국과학기술원 연구원으로 지내던 1985년 후배 3명과 함께 메디슨을 설립했다.
업종은 의료장비.
KAIST 시절 개발한 초음파 진단기로 사업에 뛰어들어 초기엔 큰 성과를 거두었다.
메디슨의 초음파 진단기 기술은 세계 시장에서도 인정받아 수출효자 품목이 됐다.
여세를 몰아 메디슨은 96년 증권거래소 시장에 상장됐다.
같은 해 오스트리아의 초음파 진단기 업체인 크레츠테크닉을 인수했다.
97년 세계 최초로 3차원 초음파 진단기를 개발했으며 이후 휴대용 초음파 진단기,무(無)필름X레이 등 첨단 제품을 잇달아 선보였다.
메디슨은 한창 잘나가던 시기인 99년만 해도 2천1백22억원의 매출액에 5백1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메디슨의 ''벤처연방''=이 회장은 사업실적 및 높은 주가를 발판으로 메디슨을 중심으로 한 벤처그룹을 만들기 시작했다.
스스로 ''벤처연방''을 만들고 있다고 공언할 정도였다.
메디슨은 사업영역을 떼어내 별도 회사로 만들었으며 다른 신생 벤처에 대한 투자도 대폭 늘렸다.
메디다스 메리디안 한글과컴퓨터 비트컴퓨터 등이 관계사로 연결됐다.
자회사와 투자회사를 합쳐 계열 및 관계회사가 한때 50여개사에 이르렀다.
업계 관계자는 "메디슨의 내부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았을 때에도 회사채 기업어음 은행차입금 등을 동원해 사업 확장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벤처연방제론에 대해 "핵심 역량을 구축하고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를 활용해 제품 및 시장을 넓혀나가는 다각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연방 전략''만이 벤처기업이 가야 할 ''왕도''인 것처럼 다른 벤처기업인들에게 설파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 회장은 벤처기업협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지냈다.
◇무너지는 신화=이 회장의 벤처연방은 2000년초 벤처거품론이 제기되면서 붕괴되기 시작했다.
코스닥시장이 가라앉으면서 투자자금의 회수 시점을 기약할 수 없게 됐다.
회수가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를 파악한 신용평가회사들이 메디슨의 신용등급을 투자적격 등급에서 투기 등급으로 강등시켰다.
연방제 붕괴와 함께 핵심 역량인 초음파 진단기의 경쟁력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신뢰도와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상황에서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다 보니 가격을 낮춰 팔 수밖에 없었다.
자금상황 악화로 초음파 진단기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크레츠테크닉을 매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이 회장의 구조조정도 실패=이 회장은 크레츠테크닉 매각대금으로 유동성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해왔다.
동시에 자구책으로 회사 분할을 시도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크레츠테크닉 매각대금 1억유로(원화 1천2백억원) 중 충당금으로 인해 실제 유입대금은 6백50억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자금시장에서 비관론을 촉진시켰다.
회사분할안도 지난해말 백지화했다.
결국 메디슨은 총 차입금 2천4백70억원을 감당할 길이 없다고 판단하고 29일 백기를 들었다.
한국신용정보의 김재범 전자통신평가실장은 "메디슨의 좌초는 건실한 벤처기업이 무리하게 확장경영에 나섰기 때문"이라며 "메디슨이 주식시장이나 벤처 붐에 편승하지 않고 한 길을 갔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