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한국문단 비사'] (1) '27세에 요절한 천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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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이상은 강릉 김씨이고 이름은 해경(海卿)이다.
그는 우리 나라가 일본에 강제 병합되던 해인 1910년 음력 8월 20일 서울 사직동에서 태어난다.
아버지는 구한말 궁내부 활판소에서 일하다가 손가락 셋이 잘린 뒤 이발소를 차린 김연창(金演昌)이다.
해경은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네 살이 되던 해 그는 총독부 상공과 기술관으로 있던 백부 김연필(金演弼)의 양자로 들어간다.
이렇게 백부의 양자가 된 것은 해경이 태어날 무렵부터 급격히 기운 가세 때문이다.
백부는 어린 해경에게 엄격하면서도 자애로운 부성애를 베풀지만,백모는 이와 달리 증오와 소외를 맛보게 한다.
이상은 시대의 불행과 환멸을 자양분으로 저의 초현실주의 문학을 키워나갔다.
이상(李箱)은 황음(荒淫)과 일탈(逸脫)로 얼룩진 기이한 사생활로 광기의 시대가 보여주는 허무와 희망 없음에 대응하는 이상(異常)이었다.
그는 자청하여 한국 문학의 돌연 변이,이단아가 되었다.
그는 시대의 제단에 초현실주의 문학과 피와 살을 발라낸 박제가 되어버린 제 삶을 제물로 바쳤다.
"멜론이 먹고 싶소…"
요절 천재 작가 이상이 스물일곱 해에 걸친 삶을 접으며 흘려보낸 마지막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