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中閑談] (27) '종성 스님(임제선원 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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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청 맞은 편의 봉천7동 주택가 골목길 모퉁이 2층집.살림집 같은 철제 대문에 "임제선원"이라는 큰 글씨와 정기법회 안내문이 붙어있다.
보살법회,일요법회,공무원법회,교수.교원법회,법조인법회...
교수,공무원,법조인들은 이 곳 조실 종성 스님(宗成.72)스님의 지도를 받으러 오는 재가(在家) 수행자들이다.
2층으로 올라가니 종성 스님은 자리보전을 하고 누워 있다.
12년째 살아온 이 집이 너무 비좁아 인근의 좀 더 넓은 장소로 선원을 옮기려고 짐을 꾸리다 허리를 삐끗했다고 한다.
"헛걸음을 했구나" 싶은데 노장은 불편한 몸을 추스린다.
선(禪)에 대해 한마디라도 더 일러주고 싶어서다.
먼저 선의 본질에 대해 물었더니 노장은 불교의 본질과 각 종파의 형성,화두선의 등장 이유 등을 소상히 가르쳐준다.
"불교의 본질은 한 마디로 마음 심(心)자를 연구해서 아는 겁니다.
화엄경에 삼계유일심(三界唯一心) 심외무별법(心外無別法),즉 삼계는 오직 한 마음이니 마음밖에 별 도리가 없다고 했어요.
이 마음을 밝혀서 진여자성(眞如自性)을 보는 것이 불교의 근본입니다"
참선은 자성을 보고 성불하는 지름길이요 이를 위한 방편이 화두다.
역대 조사들이 남긴 1천7백가지의 화두는 말만 다를 뿐 내용은 다 똑같다는 게 노장의 설명이다.
그런데 석가모니불 당시에는 없었던 화두가 왜 등장했을까.
세월이 지날수록 불법이 쇠하고 사람들의 근기도 낮아지므로 새로운 공부방법이 필요하게 됐다는 것이다.
"화두란 본래 샛별같이 초롱초롱하면서도 고요하고 고요한(惺惺寂積·성성적적) 마음 안의 소식을 알려주는 암호예요.
화두가 ''뜰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이건 ''무(無)자''이건 내용은 한결같이 성성적적입니다.
늘 성성적적한 걸 염두에 두면 흐트러졌던 마음이 하나로 뭉쳐져서 한 덩어리가 되고 이를 오래 오래 유지하면 어느 순간에 마음이 툭 터지면서 희열의 기운이 단전에서 머리끝까지 올라와요.
이게 견성(見性)입니다"
노장은 "세상에서 견성의 희열보다 더 좋은 재미는 없다"면서 "이런 재미가 있으니 머리 깎고 중노릇하지 그렇잖으면 누가 중노릇하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이런 재미는 견성의 첫 단계인 초견성일뿐이다.
눈 밝은 큰스님을 찾아가 깨침의 내용을 점검받고 다듬어야 마침내 확철대오(廓徹大悟)의 경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움직이거나 가만히 있거나(動靜),꿈속에서나(夢中),깊은 잠에 들었을 때나(熟眠) 화두가 한결같아야(一如) 견성할 수 있다고 한다.
"화두선은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쉽습니다.
어렵기로는 쌀부대를 짊어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고 쉽게 보자면 평상에 앉아 다리를 내리는 것과 같아요.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지요"
전북 부안에서 태어난 종산 스님은 출가 전에 초견성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20대의 학창시절에 인생의 의미와 영원하고 안락한 삶에 대해 고민하다 "부처와 조사의 마음은 항상 성성적적한데 왜 내 마음은 그렇지 않은가"라며 크게 의심했다.
침식을 잊을 정도로 7일간 의심을 키우다 기가 위로 올라와 머리가 터지는 것 같은 고통에 직면했다.
이 때 단전으로 기운을 내리고 숨을 한번 들이쉬는 찰나,의심하던 마음이 밝게 툭 터지더라는 것.25세의 나이에,출가도 하지 않은 채 초견성에 이른 것이다.
"변산의 내소사 서래선림(西來禪林)으로 해안선사를 찾아가 한차례의 문답으로 인가를 받았지요.
이어 서옹 스님이 일본유학에서 돌아와 백양사에 머문다길래 찾아가서 견처(見處·깨달음의 경지)를 말씀드렸더니 ''공부를 많이 하기는 했는데 좀 더 해보라''고 하셨어요.
그 길로 선사의 문하에 출가했지요.
행자생활을 하지 않고 바로 계를 받은 이는 저하고 성철 스님 뿐이랍니다"
이 때가 지난 68년.38세의 늦깎이로 출가했던 노장은 이후 파자소암(婆子燒庵·노파가 암자를 불태워버림)을 화두로 더욱 정진한 결과 확철대오해 지난 92년 서옹 스님으로부터 전법게를 받았다.
이 확철대오의 세계를 노장은 걸림 없고 자유로운 경지라고 했다.
목우도의 마지막 단계인 입전수수(入廛垂手·손을 내리고 시장터에 들어섬)처럼 중이 도살장에 가든,장바닥에 가든,노래를 부르든,걸림없이 자유롭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렇게 확철대오한 것이 어떻게 자비행으로 연결되는 것일까.
"내가 깨친 것을 남에게 전해주고 알려야지요.
선사의 이타행(利他行)은 마음구원이 제일이라,바로 통해버리는 것입니다"
노장은 조계종이 선종임을 거듭 강조하면서 선과 교(敎)를 아우르는 통불교론에 대해 "불법을 흔드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아울러 단박에 깨치고 단박에 닦는다는 돈오돈수(頓悟頓修)가 옳은 것임을 역설했다.
방안을 둘러보니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는 선사의 방 같지 않게 방대한 분량의 책으로 빼곡하다.
책이 많은 이유를 묻?노장은 "이 시대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언어로 선을 전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노장은 다시 한번 화두선을 강조한다.
"古鏡未磨時如何(고경미마시여하·옛거울을 닦지 못했을 때에는 어떠한고) 磨後如何(마후여하·닦은 뒤에는 어떠한고) 이를 알면 눈 뜬 사람이고 이를 모르면 눈이 먼 사람이니라"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