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골프일기] '벙어리 냉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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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니 속좁은 사람이 되고,입 꾹 다물고 있자니 손해보는 듯하고….
결국 아무 말도 못해 참아버리고 마는 ''벙어리 냉가슴''이 있다.
골프에도 있다.
동반자의 매너가 몹시 화나도 뭐라 지적하기 힘들다.
그랬다가 남은 홀들의 분위기가 살벌해질까봐,혹은 이번에만 보고 안볼 사람도 아닌데…,하는 마음으로 꾹꾹 참는다.
연습장에도 있다.
연습시간이 다 끝나도록 안 보이는 레슨프로가 야속하다.
하지만 쉽게 불평도 못한다.
그랬다가 미운 털 박혀 눈밖에 나버리면 어쩌나 싶어서….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이,또 있다.
바로 골프장 가는 카풀 차안에 있다.
차가 넓다는 이유로,남자라는 이유로,혹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 등으로 카풀은 유독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유로 카풀을 도맡아하던 후배 S의 푸념을 듣게 되었다.
"제 차가 넓고,또 방향도 같으니까 선배들이 제 차를 많이 이용해요.물론 제가 술도 못 마시니 그래도 되지만 사실 가끔 속상해요.저는 카풀 해드리려면 남보다 한 두 시간 먼저 서둘러야 하고,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데….그분들은 그걸 잘 모르는가봐요.그 먼 골프장 한 번 다녀오면 기름 계기판은 뚝뚝 떨어져있고,몸은 지칠대로 지쳐있고….기름값까지는 아니더라도 톨게이트 요금이라도 내주면 좋으련만 옆에서 잠만 자는 선배들이 야속해요"
뜨끔했다.
나 역시 그 후배의 차를 아무 생각 없이 얻어 탄 적이 있지 않았던가.
''나를 잘 따르는 후배니까,소풍가는 기분인데 어때? 대신 내가 옆에서 조잘거리며 즐겁게 해주잖아''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무임승차했었다.
푸념을 듣고 나니 운전해주는 사람의 고생을 그냥 넘겨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한 선배의 차를 얻어타게 된 일행은 흰 봉투에 주유비 정도의 성의를 모았다.
''드려도 안받으시면 어쩌나?''하는 우려가 컸다.
하지만 우려일 뿐,내릴 때 "오늘 고생하셨죠?"하며 차 뒤에 쓰윽 놓고 내리자,그 분 얼굴이 꽃처럼 환해진다.
흔쾌히 받아주시니 더 좋았다.
주유비가 껄끄러우면,음료수 한 상자면 어떻고,즐겨쓰는 볼 한 줄이면 어떻겠는가?
얼마 후 고향 가는 길 카풀도 생길 것이다.
방향이 같다는 이유로,몇 시간 동안 꼼짝없이 운전을 해야 하는 분들이 있다.
그 피곤함과 비용에 대한 감사함을 잊으면,그 차안에 벙어리 냉가슴 앓는 분이 생길지 모른다.
고영분 < 골프스카이닷컴 편집장 moon@golfsk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