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을 오르며...] 4개고을 아우르는 넉넉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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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추위의 고비를 넘긴 것 같다.
벌써 입춘(4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
평년기온을 자주 웃돈 탓인지 생체리듬이 흐트러져 헤매고는 했다는 이들도 많다.
이럴 때 한번쯤 산에 올라보자.
다리에는 땅의 힘을, 가슴에는 하늘의 기운을 그리고 정상에서 멀리 던지는 시선속에 또다른 시작의 큰 각오를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
덕유산(德裕山.1,614m)으로 향한다.
덕유산은 백두, 묘향, 오대, 지리와 더불어 한국의 5대 토산(土山)으로 꼽히는 명산.
백두대간이 서남쪽으로 뻗어내려 소백산과 속리산을 세우고, 다시 지리산으로 내닫는 도중 그 중심부에 빚어 놓았다.
전북 무주, 장수와 경남 거창, 함양의 2도 4군을 아우르는 품이 넉넉하다.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관문이었던 나제통문을 비롯 원당천을 따라 있는 70리 구천동계곡의 절경으로도 이름 높다.
삼공리 구천동관광단지에서 신발끈을 고쳐 맨다.
보통의 산행객들이 많이 찾는 백련사~향적봉코스의 출발점이다.
백련사까지는 길이 잘 닦여 있다.
인월교부터 구천동계곡미를 대표한다는 절경이 이어진다.
칠봉의 사자가 내려와 목욕했다는 사자담(17경), 선녀들이 비파를 뜯었다는 비파담(19경), 여울물 소리가 거문고를 타는 것 같다는 금포탄(22경) 등이 눈길을 잡는다.
살짝 덮인 눈과 어울린 모습들이 위압적이지 않다.
''계불공자구천인(戒佛功者九千人)의 둔소(屯所)''(명종 7년 향적봉기)에서 유래되었다는 구천동, ''십승지일(十勝之日)이요 삼풍지지(三豊之地)''(남사고)라 했던 무주땅의 기운이 새롭게 느껴진다.
신라때 백련이 핀 곳에 지었다는 백련사까지 1시간30분 걸음이 여유롭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대웅전과 명부전 사이를 지나 본격적인 산행길이 기다리고 있다.
4백m 위 계단(戒壇)까지는 한걸음.
이후 숨이 턱턱 막히는 된비알이 곳곳에 버티고 있다.
나무계단이 잘 놓여 있지만 만만히 볼게 아니다.
눈꽃이 녹아버린 나무숲도 걸음을 더디게 만든다.
부산에서 왔다는 신동진씨(29)가 뜀박질하듯 오른다.
"그래도 부드러운 산이예요. 당일산행지로 덕유산만한 데가 없어요"
8부 능선에서부터 멀리 왼편으로 둘러쳐진 산줄기가 보인다.
발아래 쌓인 눈이 점점 더 두터워진다.
그대로 드러누워 엉덩이썰매를 타고 하산객의 모습이 조금 위험해 보인다.
백련사에서 2시간, 드디어 구천동절경의 마지막 33경인 향적봉 정상이다.
사방으로 높은 산줄기가 빙 둘러쳐진 모습이 장쾌하다.
가야산, 황매산, 지리산 천왕봉에 운장산, 대둔산, 계룡산에 이르기까지 눈으로 하얀 능선이 호방하게 둘러쳐져 있다.
향적봉 산장쪽 가르마처럼 나 있는 좁은 눈밭길을 따르는 산행객의 실루엣이 미니어처세계를 연상시킨다.
충주에서 왔다는 50대 중반 산행객.
"머릿속에 그려 왔던 주목과 고사목의 화려한 눈꽃을 보지 못해 좀 아쉽기는 해요.
그러나 겨울 향적봉 정상에서의 조망은 늘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하지요"
다시 무주리조트 곤돌라가 닿는 설천봉까지 15분.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은 사람들이 향적봉쪽으로 줄을 잇는다.
무주리조트쪽에서 곤돌라를 타고 올라온 사람들이다.
땀냄새는 느낄수 없지만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
온가족이 함께 한 여행길이라면, 함박눈이 쏟아져 눈꽃이 절정을 뽐내는 시간이라면.
무주=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