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면도 자국이 새파란 남성들이 피부미용을 논한다. "저흰 스킨 로션 바를 때 꼭 화장솜을 사용합니다. 저희 제품은 그래야만 피부 정리정돈이 제대로 되거든요" 멀쩡한 청년들이 웬 피부미용이냐 하겠지만 흰색 유니폼을 입고 있는 이들에게서는 여성 못지않은 전문가적 분위기가 풍겨나온다. 오정곤(27) 박준기(26) 안평호(26) 김경철씨(24).국내에 진출한 미국 브랜드의 화장품 "클리니크"에 근무하는 남성 뷰티 컨설턴트들의 얘기다. 뷰티 컨설턴트(일명 피부 컨설턴트)는 말 그대로 고객의 피부 타입과 취향에 맞춰 제품 선택을 도와주고 판매하는 전문가. 클리니크가 국내에서 남성 컨설턴트를 뽑기 시작한 것은 2년반 전부터.세계적으로 한국이 최초라니 과연 "금남의 벽"을 허물었다는 자부심을 가질만도 하다. "남들이 잘 안하는 걸 한다는 게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그러니깐 매스컴도 타는 거 아니겠어요(너털웃음)" 현대백화점 신촌점에서 일하는 오정곤씨.넷중 맏이격인 그는 클리니크의 남성 피부 컨설턴트 "1호"다. 지난 1999년 가을,그가 흰색 유니폼을 걸치고 매장에 처음 등장했을 때 주위의 시선을 한몸에 받은 것은 당연지사. "처음 매장에 나갔을 땐 사실 너무 창피해서 손님 눈을 바로 쳐다보지도 못했어요. 이틀 내내 숨을 곳을 찾아 도망만 다녔죠" 하지만 이제 그는 명실공히 매장이 내세우는 "스타" 사원이며 지점내 2인자격인 "팀리더"로 맹활약하고 있다. 그만을 찾는 단골 여성 고객들이 수십명에 달할 정도다. "우선 청일점이다 보니 기억에 남잖아요. 게다가 남성 컨설턴트를 오히려 편하게 느끼시는 여성 고객이 꽤 많아요. 뭔가 든든하고 신뢰감이 느껴진다나요" 역시 매장에서 "팀리더"를 맡고 있는 박준기씨(롯데백화점 잠실점 근무)의 설명이다. 친구 동생의 소개로 컨설턴트가 됐다는 그는 "스스로가 남자임을 잊고 여자가 되려는 노력을 한다"며 "그래서인지 가끔씩 언니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고 웃으며 말한다. 그는 여자친구가 메이크업 계통에서 일하고 있어서 서로를 대상으로 스킨케어와 메이크업 실습도 곧잘 한다고."여자친구한테도 겉치장보다 속피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조언을 종종 합니다" 박씨와 입사전부터 친구 사이인 안평호씨(현대백화점 압구정점 근무).아직 개구장이 소년 같은 인상인 그는 "주로 여성들을 상대하다보니 여성 심리를 파악하는 데는 도사가 됐다"고 자랑한다. "손님들이 딸내미가 어젯밤 집에 안들어왔다는 고민까지도 털어놓을 정도로 친해졌다"고 .그는 "한국 여성들은 98%가 본인의 피부가 민감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제대로 골라쓰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착오"라고 전문가적 시각의 일단을 내비치기도 했다. 입사한지 1년 남짓된 "막내둥이" 김경철씨(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근무)는 유난히 피부가 뽀얗다. 그래서인지 이 직업이 퍽이나 잘 어울리지만 초기엔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다고."정말 내 자식이 맞냐고 말리셨죠.그런데 지금은 어머니 피부도 제 덕분에 몰라보게 고와지셨다고 흐뭇해하세요. 친척들 모임에 가도 앞다퉈 저한테 피부 상담을 받으려고들 하시고요" 한마디로 이들은 "인기짱"이다. 희귀성 때문만이 아니다. 개척자로서의 자부심과 전문가가 되기위해 기울인 노력의 결과다. "저...기자님,혹시 아침에 화장품 몇가지 바르셨어요? 저흰 6~7개 종류는 족히 발랐어요. 우선 저희 피부가 좋아야지 손님들도 믿고 상담을 받지 않으시겠어요?" "..." 이들의 이런 정성이야말로 상담을 절로 받고 싶게 만드는 부분이 아닐런지. 고성연 기자 amaz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