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냉혹하고 가차없다. 참전용사들은 "작전의 소모품"으로 철저히 전락한다. 전쟁영웅은 그들의 무덤위에 나부끼는 "빛바랜 깃발"이다. 영화 "블랙호크다운"은 실패한 작전을 토대로 전쟁의 속성을 극사실주의로 파헤친 드라마다. "블레이드 러너""에일리언""글래디에이터"등에서 과거와 미래 세계를 설득력있게 표현했던 리들리 스콧 감독이 현대 지구촌의 참경을 현미경을 들이대고 해부한다. 이 영화는 전쟁영웅담이 아니라 일반 병사들의 처절한 생존투쟁을 균형잡힌 시각으로 담은 보고서다. 20세기말 소말리아 내전에서 발생한 실화를 쓴 마크 보우덴의 논픽션 원작을 바탕으로 다큐멘터리를 방불케하는 영화로 옮겨졌다. 지난 93년 10월 내전이 한창인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 평화유지를 내걸고 파견된 미군특수부대가 적군 민병대장 에이디드를 잡기 위해 적진에 뛰어든다. 에이디드는 UN구호식량을 착취했고,내전에서 30만명의 희생자를 낳은 "살인병기". 세계 최강의 화력을 자랑하는 미군 특수부대의 공격은 "명분"과 "전력"에서 승리를 예약한 듯 싶었다. 그러나 전쟁의 속성처럼 현실은 혹독했다. 최첨단 "블랙호크"헬기가 잇따라 격추(다운)되면서 미군병사들은 민병대들로부터 역공받는다. 미군의 작전도 "공격"에서 "구출"과 "생존"으로 바뀐다. 작전예정 시간은 원래 1시간이었지만 대원들은 18시간이나 사지(死地)에서 부상한 채 버텨야 했다. 시가전(市街戰)의 참경들이 생생하게 표현된다. 건물과 병사 사이로 총탄과 포탄이 날아 다니고,그 파편에 병사의 팔다리가 잘리고 몸통이 반토막난다. 위생병은 잘린 다리의 지혈을 위해 살속을 헤집어 동맥을 찾고 병사는 나뒹구는 동료의 팔뚝을 집어 챙긴다. 운전병은 총탄세례로 피범벅된 얼굴로 액셀레이터를 밟고 옆좌석 지휘관이 핸들을 움직인다. 관통상 입은 병사들은 제자리서 "위치사수" 임무를 부여받는다. 병사들에게 "애국""구원""평화" 등의 거창한 구호는 어디에도 없다. 그저 사지(死地)에 갖힌 동료를 구출하려는 "전우애"만 존재할 뿐이다. 이 작품은 "전쟁은 살인행위일 뿐"임을 극명하게 증언한다. 더 많은 살인을 저지른 쪽이 평화협상의 주도권을 쥐게 마련이다. 이 전투의 사망자는 미군 19명,소말리아 민병대측 1천여명이란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여기서 지휘관들은 러닝셔츠 차림이거나 사병들과 같은 복장으로 등장한다. 목숨을 건 전장에선 모두가 동등한 입장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스타에 초점을 두기보다 대원 전체를 훑으며 "액션대작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냈다. 육군소장 개리슨역에는 극작가이자 감독인 샘 세퍼드,맷 에버스먼 중사역에는 조쉬 하트넷,"물랑루즈"에서 남우주연을 맡았던 이완 맥그리거가 특수군 그림스역을 맡았다. 1일 개봉 15세 관람가.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