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조류보호협회(RSPB)는 2000년 여름 20년의 숙원을 풀었다. 영국군의 사격장으로 1백년 이상 사용되던 레이햄습지(濕地)를 1백만파운드에 사들이는 개가를 올린 것이다. 레이햄습지는 런던을 관통하는 테임스강에서 불과 19㎞ 떨어진 곳으로 많은 동식물이 서식해 조류보호협회가 국방부를 상대로 끈질기게 매입교섭을 벌여왔던 곳이었다. 또 같은 해 런던에는 인공습지가 만들어져 일반에 개장됐다. 시민단체들과 행정관청이 공동으로 만들어낸 역작으로 국내외의 큰 찬사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우리와는 대비되는 사례들이다. 우리나라는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습지파괴가 곳곳에서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내륙습지는 4백90㎢인데 이중 법으로 보호받는 면적은 10분의 1에 불과,개발을 막기엔 역부족이라고 환경론자들은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습지 범주에 드는 갯벌만 해도 지난 10년간 30%가 상실됐다는 정부의 공식보고서가 나와 있기도 하다. 생태계의 보고인 습지를 보전하고 복원하려는 노력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갈수록 확산되는 추세다. 습지가 파괴되면 생물들의 서식처 상실은 물론 수질정화 능력도 떨어져 결국 그 폐해는 부메랑이 되어 인간에게 되돌아 오기 때문일 것이다. 습지에 대한 이런 중요성이 확산되면서 '세계 습지의 날'(2일)이 제정됐고,올해로 6번째를 맞았다. 이날은 1971년 2월2일 이란의 람사에서 열린 국제습지협약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이 협약에는 우리나라를 포함, 1백여개 국가가 가입하고 있다. 이날을 계기로 세계 각국은 습지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갖고 있으며,우리 환경부와 해양수산부도 심포지엄과 함께 금강하구의 습지 현장답사 등의 행사를 마련했다. 환경론자들은 습지만큼 값진 생태계자원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개발이익'이라는 당장의 이익에 급급해 습지파괴가 일어나는 상황을 감안할 때, 습지의 날을 맞아 이를 막아야 한다는 각오를 다져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