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바꿔야 '경제'가 산다] (3) 겉도는 산학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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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8월 국내 H 기업은 화학 관련 신규사업 진출과 관련,국립대학 이모 교수 연구팀에 30억짜리 프로젝트를 발주하려고 했다.
H 기업의 연구 프로젝트 담당과장과 대학 교수 사이의 실무적인 협의는 이미 끝난 상태였다.
하지만 계약 체결 막판에서 H기업 법무팀이 제동을 걸어왔다.
실제 연구는 대학 교수가 수행해도 연구 성과나 기밀 유지 등에 대한 법적 책임은 국가가 지도록 돼 있는 등 법적 계약 절차가 불명확하다는 게 이유였다.
기업체에서 대학에 프로젝트를 맡기기 꺼려하는 이유는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모 전자업체의 연구개발팀장도 "요즘처럼 기술 발전속도가 빠른 때에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데 6개월에서 1년을 넘기면 안된다"며 "하지만 대학들은 인력이나 시설.기자재,능력 등 어느모로 보더라도 기업들의 수요를 제때에 맞추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박종만 한국산업기술평가원 기술확산본부장은 "국내 기업들은 해외 대학에는 몇십억씩 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맡겨도 우리나라 대학에는 연구 성과를 믿지 못해 맡기기를 꺼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공계 대학 커리큘럼이 실제 산업체에서 필요한 현실적.실용적 교육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산학협력 연구에 대한 실질적 인센티브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박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대학이 외부에서 산학협력 연구과제를 따와도 전기.수도료 등 연구수행시 들어가는 각종 부대비용인 간접연구비 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재정손실을 입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한 국립대 전자공학부의 이모교수는 "솔직히 외부에서 프로젝트를 따오면 골치만 아프다"고 털어놨다.
연구개발 비용에 교수나 대학원생의 인건비조차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등 보상도 제대로 못받는 상황에서 연구와 강의,학생지도를 병행해야 해 업무 부담만 가중되기 때문이다.
전체 이공계 박사인력의 76%가 모여있는 대학의 특허출원은 전체 특허출원의 1%에도 못미친다.
특히 국립대의 공식 특허보유 건수는 전국을 통틀어 82건(작년 10월 기준)에 그쳤다.
경북대 이종현 교수는 이와 관련,"첨단 기술을 개발해도 국가 공무원인 국립대 교수의 발명특허는 지금까지 국가 소유로 귀속됐다"며 "자기 권리로 인정되지도 않는데 누가 자기 돈 들여가며 특허를 내겠느냐"고 설명했다.
현재 미국에는 약 2백40개의 기술이전사무소(TLO)들이 활동하며 각 대학에서 개발한 기술을 기업들에 팔고 있다.
지난 98년 미국 대학은 약 7천개의 특허를 출원.등록했고 새로운 라이선스 계약만 3천6백여개를 체결했다.
99년 미국 대학내 TLO의 연간 기술료 총 수입은 8백62억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한국은 전국 주요 사립대학 20곳에 기술이전센터가 설치됐다.
지금까지 성사된 기술이전 건수는 26건에 불과하다.
김창경 한양대 공대 교수는 "산학 협력 활성화를 위해서는 우선 대학 커리큘럼 구성에서부터 기업이 적극 참여해 보다 현실적인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산업체에서 수년간 일하며 현장경험을 쌓은 박사학위 취득자가 공대 교수로 임용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교수를 기업으로 파견시키거나 업체 근무 경험을 가진 인력을 교수로 임용하는 등 산학 인력 교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방실 기자 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