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ugjoo@kitech.re.kr 며칠 전 시간에 쫓긴 아내가 불법 유턴을 했다. 신호가 바뀌자 앞서 대기하고 있던 차보다 먼저 핸들을 돌린 것이다. 아내는 그 즉시 교통경찰에 발각됐고,면허증 제시를 요구받았다. 순간 아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싼 걸로 끊어주세요"였다. 당시의 정황을 설명하는 아내의 표정에는 풀 죽은 기색이 역력했다. 시간에 대지 못할 것같은 조바심으로 교통법규를 위반하고,면허증 제시를 요구받자 대뜸 싼 걸로 끊어달라고 부탁한 자신의 행동이 스스로도 겸연쩍었던 모양이다. 알만한 사람이 왜 그런 지각없는 행동을 했느냐고 점잖게 나무랐지만,나 역시 내심 켕기는 구석이 없지는 않았다. 기술표준원장 시절,약속한 시간 안에 닿기도 빠듯한데 교통체증으로 길마저 막혀 있으면 운전사는 슬그머니 버스전용차로로 들어서곤 했다. 대개 중요한 회의나 국회에 약속이 잡혀 있는 경우여서,나 또한 그런 운전사를 만류하지 않았다. 오히려 촌각을 다툴 만큼 바쁜 상황이므로 단속에 걸리더라도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고 양심을 다독였다. 머리 속으로는 그런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어떤 말로 경찰관을 설득할 것인 지를 궁리하고는 했다. 이런 사례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최근 부쩍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시기를 늦추려는 경향이 강해졌는데,입학유예 허가를 받기 위해 허위 진단서를 끊으려는 학부모들로 소아과마다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 "안면 있는 의사에게 부탁하면 진단서를 떼 준다"는 말을 듣고 소아과로 몰려간 학부모들이나, 거짓 진단서를 써 준 의사들이나 선진국 같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위법을 저지른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이와 비슷한 위법을 행하고 산다. 법을 어겨놓고 법을 어긴 사실에 무감하다면,사회를 썩게 하는 각종 균은 바로 그 부패 불감증의 자리에서부터 번식력을 키우게 마련이다. 작은 부패들이 큰 부패로 연결되고,큰 부패를 저지르다 걸릴 경우 반성보다 나쁜 운을 탓하는 것도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에서 싹튼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출판인들이 대학 교수들의 교재 복사 관행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였다는 소식은 더 이상 이런 작은 부패들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돼 반갑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를 "인간이 도덕을 완성하기 위한 제도로서 윤리적 이념의 발현"이라고 정의했으나 모든 국가는 개개의 국민을 구성요소로 한다. 부패균이 안착할 수 없는 사회 시스템을 가동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이제는 국민들의 의식과 행동이 그 시스템 안에서 낱낱의 소금으로 기능해야만 한다. 2001년 현재 우리나라의 부패인지지수(CPI)는 91개국 중 42위를 기록했다. 국민 개개인이 알게 모르게 행하는 작은 부패들을 제거하는 일부터 서둘러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