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中閑談] (28) '진제 스님(부산 해운정사 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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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부산 장수산 기슭의 해운정사(海雲精舍).일주문 위로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자 목재를 자르는 전기톱 소리가 요란하다.
1년 내내 수좌(스님)와 신도들이 쉼없이 정진하는 곳이라 적묵의 세계일줄 알았는데 뜻밖의 소음이 당황스럽다.
종무소 옆 큰 방에서 이 절의 조실 진제 스님(眞際.68)을 만났다.
바깥의 소음은 오는 10월에 이 곳에서 열 "국제무차선대법회"에 참석할 손님들을 맞기 위한 불사 때문이라고 한다.
범종각도 새로 짓고 요사채도 늘리는 모양이다.
'무차회(無遮會)'란 성인과 속인,상하귀천에 관계 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불법을 논하는 자리.당대의 선지식(善知識)을 모시고 깨달음의 경지를 논하는 법거량의 기회다.
한국에선 1912년 방한암 스님이 금강산 건봉사에서 무차선회를 연 데 이어 지난 98년과 2000년 고불총림 방장 서옹 스님이 백양사에서 두차례의 무차선회를 열어 활발발(活潑潑)한 선의 경지를 펼친 바 있다.
"서옹 대종사께서 '이번엔 진제가 한 번 해보지'라고 하시더군요.
백양사에 비해 해운정사는 교통이 편리해서 국내 어디서든 오기 편하고 중국과 일본에서도 쉽게 올 수 있지요.
그래서 서옹 대종사와 중국 조주원 방장 정혜선사,일본 임제종이나 조동종의 관장을 모시고 무차선회를 열 계획입니다"
동양 3국의 대선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 무차선 대법회를 갖기는 선불교 역사에서 처음이다.
언설(言說)로는 표현할 수 없다는 깨달음의 경지를 어떻게 묻고 또 통역할지도 궁금해진다.
진제 스님이 이렇게 무차선회를 여는 까닭은 무엇일까.
"참된 선지식이란 학인을 지도할 때만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살활(殺活)의 검(劍)을 자재하게 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학인들이 묻는 말에 척척 답을 해줘야지요.
만약 삿된 소견으로 그릇 지도해 만인의 눈을 멀게 한다면 그 허물만으로도 능히 지옥에 갈 수 있습니다"
진제 스님은 수행하는 사람들 역시 마땅히 선지식을 찾아 견처(見處)를 점검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석가모니불도 '스승 없이 깨달은 자는 천마외도(無師自悟 天魔外道)'라고 했다는 것.진제 스님이 견처를 시험받으러 오는 사람이면 스님이건 신도건 마다않고 선문(禪門)을 활짝 열어두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불법 그 자체는 한량 없이 자비롭지만 불법을 논함에는 인정사정 없다.
그래서 노장(老長)은 수행자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남녀색(色)에 무심(無心)하라,돈에 무심하라,먹는 것에 무심하라,허망한 몸뚱이에 초연하라.
"누가 장검을 목에 들이대고 화두를 내놓거나 목을 내놓으라고 한다면 흔연히 목을 내밀 수 있는 신심과 용단이 있어야 합니다.
암탉은 병아리를 까기 위해 21일 동안 먹고 싶은 것,하고 싶은 것을 참아가며 알을 품습니다.
그렇잖고 수시로 들락거리면 1년 내내 품고 있어도 병아리를 깔 수 없는 법이지요.
화두일념을 이루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노장은 생활 속의 선을 강조한다.
흐르는 물처럼 화두가 끊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바른 법문을 듣고 바른 지도를 받아 화두를 놓지 않는다면 부엌이든 안방이든 사무실이든 만원버스든 다 선방이라는 얘기다.
스님에게 참선이 뭐냐고 '허튼' 질문을 해봤다.
"참선이란 마음의 고향에 이르는 수행법이지요.
누구든지 선수행을 통해 마음의 고향에 돌아가면 진리의 체성(體性)을 바로보게 되고 나고 죽는 윤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일반인들도 참선을 하면 식견이 맑아져서 삶의 지혜를 갖게 되지요"
경남 남해에서 태어난 진제 스님은 지난 54년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설석우(薛石友) 스님을 은사로 출가,'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 本來面目·부모가 태어나기 전의 본 모습은 무엇인가)'이라는 화두를 들고 각고정진했다.
석우 선사가 열반한 뒤에는 묘관음사 향곡 스님으로부터 '향엄상수화(香嚴上樹話)'라는 새로운 화두를 받았다.
'향엄상수화'는 "어떤 사람이 아주 높은 나무 위에서 손이나 발로 가지를 잡거나 밟지 않은 채 나뭇가지를 입으로 물고 있을 때,다른 사람이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祖師西來意)'을 묻는다면 어찌하겠는가"라는 뜻.대답하지 않으면 묻는 이의 뜻에 어긋나고 입을 열면 나무 아래로 떨어져 죽을 상황이기 때문이다.
화두일념으로 2년여를 정진한 끝에 화두의 관문을 타파한 진제 스님은 다시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을 화두로 5년간 정진,일체의 걸림 없는 경지에 이른 뒤 이렇게 노래했다.
一棒打倒毘盧頂(일봉타도비로정·한 몽둥이 휘두르니 비로정상 무너지고)
一喝抹却千萬則(일할말각천만칙·벽력 같은 일할에 천만 갈등 흔적 없네)
二間茅庵伸脚臥(이간모암신각와·두 칸 토굴에 다리 펴고 누웠으니)
海上淸風萬古新(해상청풍만고신·바다 위 맑은 바람 만년토록 새롭도다)
언하(言下)에 흑백을 가리기로 유명했던 향곡 선사의 전법제자답게 진제 스님은 즉문즉답(卽問卽答),일체의 걸림이 없었다.
수좌계에서 '북(北)송담,남(南)진제'라 하는 이유를 알 만했다.
원통보전 앞 너른 마당에서 바다 쪽을 바라보니 해운대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더욱 상쾌하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