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바꿔야 '경제'가 산다] (4) '私교육에 멍드는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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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균 수입=3백만원. 딸(고3) 과외 및 학원비=1백50만원(수학과외 1백만원, 사회탐구.과학탐구.언어영역 등 50만원). 아들(고1) 과외 및 학원비=1백9만원 (수학과외 40만원, 사탐.과탐 48만원, 언어영역 13만원, 영어 8만원). 아파트 관리비=20만원. 생활비=50만원'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사는 주부 김경희씨(46)의 지난해 10월 생활비 지출 내역이다.
전체 수입에서 80% 이상이 자녀들의 과외비로 쓰였다.
남편이 건설업체 전문 경영인으로 일하고 있어 경제적 여유가 있는 편이지만 아이들 과외비에 허리가 휜다.
김씨는 "아이들 과외비만 안 들어가도 생활이 정말 윤택해질 것"이라며 "월급 전부를 과외비로 쓰고 생활은 보너스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한 과목에 1백만원 이상 하는 고액과외를 시키는 강남 친구들에 비하면 그래도 우리는 나은 편"이라며 "다행히 올해 딸이 대학에 입학해 이제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충북 진천의 한 중소업체 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모씨(47)는 퇴근 후 곧바로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른바 '기러기 아빠'인 김씨는 아무도 반겨주는 이 없는 썰렁한 아파트에서 혼자 인스턴트 식품으로 저녁을 때우는게 너무 싫기 때문이다.
지난 99년 아내와 함께 중.고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을 호주로 유학 떠나보낸 후 생긴 병이다.
'혼자된지' 3년 정도 돼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요즘도 아이들 생각에 회사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아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김씨는 "서울에 있을 당시 아이들 과외비로 1명당 연간 평균 1천만원 이상을 썼다"며 "그 과외비용에 약간만 더 보태면 호주에서의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경제적 부담을 감내하면서도 애들을 유학보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교육비 부담이 가정과 가정경제를 동시에 황폐화시키고 있다.
최근 경기 불황으로 집안 살림이 더욱 빠듯해지고 있는데도 사교육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가계에 엄청난 주름살을 지우고 있다.
기러기 아빠로 대변되는 '가정 파괴'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될 조짐이다.
이들 문제는 모두 공교육이 제구실을 못하고 교실 붕괴가 가속화되면서 생기는 부산물인 셈이다.
2000년 11월 한국교육개발원이 조사한 과외 실태에 따르면 전체 과외비용은 1977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0.7%(5백71억원)에 불과하던 것이 98년 2.9%(9천1백83억원)를 차지할 만큼 비대해졌다.
특히 개인 교습의 경우 97년 학생당 평균 2만2천7백18원이었으나 과외 금지가 위헌이라는 결정에 따라 과외가 자유로워지면서 2000년에는 20만4천원으로 10배 가까이 늘어났다.
입시를 앞둔 고교생은 말할 것도 없고 미취학 아동 및 초등학생의 사교육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이 2000년말 내놓은 조사자료에 따르면 3∼12세 미취학 또는 초등학생을 둔 가구의 월 평균 사교육비는 23만3천7백23원으로 월소득의 9.8%에 달했다.
이는 지난 97년 조사한 가구당 사교육비(18만3천원)에 비해 27%나 뛰어오른 것이다.
교육개발원의 김영철 수석연구위원은 "과외 비용이 가정을 파괴할 정도로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것은 학교교육만으론 좋은 대학에 갈 수 없어 인생의 낙오자가 될 것이라는 불신이 원인"이라며 "이대로 가면 학교는 교육 수요자인 가정으로부터 갈수록 배척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의 이주호 교수도 "고교 평준화 등 획일적인 교육정책과 규제가 학교 교육에 대한 만족도를 떨어뜨려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을 늘리고 있다"며 "특히 올 수능이 유난히 어렵게 출제되면서 과외에 대한 수요는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교육 불신과 사교육비 폭증에 따른 조기유학 붐은 '병든 자취생 아빠'를 양산하는 사회문제로 이어진다.
신영철 성균관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교수는 "40대 중반에는 갱년기가 찾아오는 시기여서 육체적 기능이 떨어지고 정신적 공황이 찾아오게 마련"이라며 "이런 시기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생이별할 경우 우울증 불안증 강박증에 시달리기 쉽다"고 말했다.
그는 "기러기 아빠는 공교육 부실이 만들어낸 우리 사회의 특수상황"이라며 "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을 감안할때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수찬 기자 ksc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