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탑에 안주해 있던 대학들이 시장으로 달려 나가고 있다. 대학 선택 추세가 '간판보다는 실리'로 바뀌면서 등록 미달 사태가 속출하자 서울대학도 체면을 버리고 시장을 선택했다. 7일 서울대는 사상 처음으로 수시 추가모집을 한다고 발표했다. 학생을 빼앗아 간다는 타대학의 비난을 감수하고 '고객(입학생) 모시기' 경쟁에 불을 댕긴 것이다. 이날 사학의 대표주자인 연세대학은 장기고객(입학생) 확보를 염두에 둔 기부금 모금전략을 발표했다. 이들의 움직임은 '수요와 공급'의 시장논리가 교육시장에도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 서울대는 "1차 정시모집 등록 마감 결과 간호대와 농생대 사범계열은 각각 모집 정원의 27.9%, 14.3%밖에 채우지 못했다"며 "해당 단과대의 요청에 따라 수시 추가모집을 실시키로 하고 15~16일 원서를 접수한다"고 발표했다. 서울대는 추가모집으로 정원은 채우겠지만 반대급부로 '결국 학생 빼앗아가기 아니냐'는 외부의 거센 반발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계에선 "대학이 학생을 기다리던 시대가 가고 수요자(학생)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초기 징후"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 고객모시기를 해본 적이 없는 콧대 높은 국립서울대학을 시장으로 끌어내는 파이어니어들은 누구일까. 이번 대입 정시모집에서 서울대 의대와 서울대 법대 등록을 포기하고 각각 경희대 한의예과와 성균관대 의대에 등록한 정재현씨(22.충남 논산)와 김보경씨(20.여) 같은 신세대가 그들이다. 정씨는 경남과학고 2학년 수료후 KAIST에 조기 진학, 3학년까지 물리학을 전공하다 평소 관심을 가져온 한의학 전공을 위해 뒤늦게 방향을 틀었다. 김씨의 경우 부모 등 주변 사람들의 희망에 따라 일단 서울대 법대에 복수지원을 하긴 했지만 막판 고심끝에 성균관대 의대를 선택했다. 두 소신파는 "출신대학이 꼬리표처럼 평생 따라다니는 것이 그동안의 우리 현실이었지만 우리 세대에는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 더 행복할 것"이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