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4년 4월 22일 밤은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제가 직접 만든 장비로 원자를 눈으로 처음 본 순간에 느낀 감동이란….오랫동안 함께 고생한 동료들과 밤새워 맥주를 마시며 즐거워 했던 기억이 어제처럼 생생합니다" 서울대 물리학과 국양 교수(49)는 84년 나노기술 개발에 필요한 STM(주사형터널링현미경) 제작에 성공한 순간을 이처럼 회상했다. 미국 벨연구소에서 일하던 국 교수가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IBM연구소에 이어 세계에서 5번째로 STM을 만들어낸 것이다. STM은 원자를 관찰하고 조작할 수 있는 장치.나노기술을 연구할 때 필수적인 장비다. 나노기술 관련 연구는 STM이 개발된 이후부터 사실상 가능해졌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 교수는 STM을 만들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전세계를 통틀어 STM이 몇 대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만드는지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특히 국 교수가 몸담고 있던 벨연구소와 경쟁관계에 있는 IBM연구소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STM을 개발할 때 가장 어려웠던 것은 측정대상에 장비를 접근시키는 것. 장치의 측정바늘을 측정 대상에 1나노미터(㎚)까지 가까이 가져 가는 것은 대단히 어려웠다. 극히 미세한 움직임도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고 분석 대상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1년6개월에 걸쳐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후 국 교수는 결국 STM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나노기술 기초분야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나노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고 연구해 이론적인 체계를 세우는 것이다. 당장 '돈'이 되는 분야보다 나노기술을 발달시킬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선으로 된 반도체칩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나노미터 단위의 선에 트랜지스터를 넣는 것이다. 선 형태의 반도체칩은 반도체 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 교수는 또 10나노미터 크기의 절연체에 전하를 가두는 새로운 메모리를 연구하고 있다. 국 교수는 앞으로 생물에서 개념을 따온 나노구조 장치를 연구할 계획이다. 국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81년부터 10년동안 벨연구소에서 일한 다음 귀국,91년부터 서울대에 몸담고 있다. 그는 나노기술 관련 논문 1백여편을 발표하고 국제 학술대회에서 50회 이상 강연을 했다. 현재 국제진공학회 산하 나노과학 및 기술분과와 국제STM학회의 집행위원을 맡고 있다. 김경근 기자 choi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