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개발연구원은 우리의 지하경제 규모가 최소한 국민총생산의 14∼19% 수준이라고 추정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규모는 부가가치세 탈루 규모를 근거로 추정한 것으로서 지하경제 규모에 대한 일종의 최소치라고 볼 수 있는 숫자다. 한편 1999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우리나라의 지하경제비율이 국내총생산 대비 38% 정도로서 주요 29개국중 8번째라는 통계를 발표한 바 있다. 지하경제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약 75%를 기록한 나이지리아였고 태국 이집트 필리핀 멕시코가 뒤를 이었다. 이 비율이 가장 낮은 나라는 스위스 일본 미국 등 최선진국으로 8% 정도로 추정되었고 선진국들은 평균 15%, 개도국들은 평균 30% 정도로 추산되었다. 지하경제는 그 정의와 범위가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대략 다음의 세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합법적인 활동이지만 당국에 신고되지 않고 세금을 안낸 재화나 서비스로서 이에는 고액과외, 무자료거래, 부동산투기를 통한 소득중 신고되지 않은 부분 등이 포함된다. 둘째,불법적인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으로서 마약, 밀수, 매춘, 도박, 산림도벌, 밀도살, 가짜휘발유 생산 등이 포함된다. 셋째,은폐된 현금소득과 관련된 부분으로서 사채, 현금 팁, 뇌물거래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지하경제가 생기는 첫째 요인은 역시 세금이다. '세율이 높을수록 지하는 깊어진다'는 것이 지하경제의 법칙이다. 그러고 보면 이자소득세를 피하기 위한 음성적 사채거래,양도소득세를 피하기 위한 부동산 미등기전매 행위,부가가치세를 피하기 위한 무자료 거래,관세와 수입규제를 피하기 위한 밀수행위,상속·증여세를 피하기 위한 현금증여 등 지하경제를 구성하는 수 많은 항목들은 상당부분 높은 세금을 피하기 위한 행위다. 또한 공무원과 기업,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서 행해지는 뇌물수수 등 부정부패행위와 연결된 돈의 흐름도 그대로 지하경제로 연결된다. 또 하나 지하경제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요인은 지키지도 못할 법,제대로 준수하지도 못할 규제다. 좋은 예가 하나 있다. 바로 미국의 금주법(prohibition law)이다. 1920년 발효되어 33년에 폐지된 이 법은 실로 놀랄 만한 규모의 지하경제를 만들었다. 주류의 생산 판매 소비 수입을 모두 금지한 이 법은 미국 시카고를 중심으로 활동한 전설적인 갱 알 카포네와 그 추종세력을 생성해 낸 것이다. 이들이 밀주 비즈니스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한창 때 연간 6천만달러에 이르렀고,조직원의 규모가 약 1천명이었으며,이들의 손에 죽음을 당한 사람의 숫자가 2백50명 정도에 이르렀다는 통계를 보면 입이 벌어진다. 결국 알 카포네는 살인이나 밀주가 아닌 탈세혐의로 기소되어 투옥되었지만 우리는 여기서 지키지도 못할 법이 만들어내는 폐해가 어느 정도까지 갈 수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규제를 하는 정부는 규제여부를 검사하고 모니터링하느라 비용이 들고,이를 준수하는 기업은 준수하느라 비용이 든다.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은 이를 준수하지 않고 피해가려고 하는 경제주체들이다. 이들이 로비를 하고 뇌물을 공여하면서 지하경제를 창출하고 경제에 해악을 끼치는 부분은 규제의 암묵적 비용으로서 규제자들이 반드시 고려해야 할 부분인 것이다. 조세제도 규제제도를 만들어 놓고 잘 지키라고 독려만 하고,규제를 이행하지 못하는 경제주체를 벌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정부는 항상 현재의 조세 및 규제 패키지에 무리한 요소가 있는지,민간이 이를 지키는 비용이 너무 들어서 힘들어하는지를 파악해 지키는 비용이 적게 드는 방향으로 조세나 규제체계를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지식정보산업이 새로운 원동력으로 떠오르고,끝이 모두 T자로 끝나는 신기술 6가지가 '6T brothers'로 불리면서 신성장엔진으로 부상하고 있는 지금,정부의 조세 및 규제체계에는 어떤 새로운 기술이 접목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혹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조세 및 규제체계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설계해내지도 못한 채 그저 과거의 틀을 고집하면서 새로운 지하경제나 창출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때다. chyun@mju.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