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호순 <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 현대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줄을 서는 것이 일상화돼 있다. 줄은 왜 서야 하며 어떻게 서는 것이 합리적일까. 기본적으로 줄을 서야 하는 이유는 무재고 상태에서 전달되는 서비스의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조업에서는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보유재고를 이용해 고객의 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서비스는 무형의 어떤 것으로 보관해 둘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고객은 줄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다.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서비스의 대가를 지불한 고객이 기다리는 것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좋은 품질의 서비스가 고객에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고객이 줄에서 기다리는 시간에 대한 적절한 배려가 이뤄져야 하며 이러한 배려는 줄서기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줄서기를 이해하는 방법은 크게 수리적 방법과 심리학적 방법이 이용돼 왔다. 수리적 방법은 객관적이기는 하지만 매우 엄밀한 가정이 필요하고 또 이런 방법이 설명하지 못하는 인간의 심리적인 요소도 상당부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은행의 입.출금 창구와 같이 여러 명의 서비스 직원이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때 줄을 서는 방법은 각 서비스 직원별로 줄을 서는 것과 한 줄로 서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대기행렬이론을 이용해 평균 대기시간을 계산해 보면 두 방안의 대기시간은 동일하다. 그러나 평균 대기시간이 같다고 해 고객이 두 방안을 동일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고객은 한줄서기를 선호하게 된다. 이는 적어도 일찍 온 고객이 서비스를 먼저 받게 된다는 형평성의 원리를 만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빠른 줄을 선택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므로 고객은 심리적 안정감을 누릴 수 있다. 그 외에도 한줄서기의 심리적 효과를 들자면 첫째 처음에 줄이 길어 보이기는 하지만 고객이 줄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르다. 줄에 서있는 고객이 자신의 뒤에 서있는 다른 사람을 쳐다보면 그동안 줄을 선 자신의 노력이 보상받는 느낌과 함께 상당히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둘째 기다리는 고객과 서비스를 전달받는 고객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 즉 중요한 거래를 하는 고객의 사적 권리가 보장될 여지가 있게 된다. 예컨대 현금출납기에서 거래할 때 뒤에서 기웃거리는 성급한 고객이 만들어 내는 불편함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만약 한줄서기에 번호표시스템을 더한다면 고객의 불편은 좀 더 줄어들 수 있다. 고객은 번호표를 들고 줄에서 벗어나 자신을 위한 일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줄을 설 때의 무료함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이는 '고객을 바쁘게 만들라'는 원칙에 입각한 것으로 엘리베이터 옆에 거울을 설치하여 고객의 주의를 끄는 것 등은 같은 원리가 적용된 배려다. 또 번호표 시스템은 고객이 대기시간을 예측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자신의 순번에 따라 어느 정도를 기다려야 하는 지를 짐작할 수 있으므로 고객은 편안해 질 수 있다. 놀이동산의 대기시간 표지판 역시 이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 한줄서기가 반드시 여러줄서기보다 항상 좋다는 것은 아니다. 한 줄로 설 경우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하므로 공간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고 줄이 더 길어 보이기 때문에 고객이 시스템에 들어오지 않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러한 단점이 일반적으로 맥도날드와 같은 패스트푸드점에서 한줄서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주요 이유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한줄서기가 선호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울 것이다. 서비스가 발달한 외국에서는 이미 한줄서기가 생활화된 듯하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한줄로 서는 합리성이 보편화돼 있다. 그러면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한 줄로 서느냐, 두 줄로 서느냐의 문제보다는 오히려 줄 중간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끼여드는 무례한을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러한 작은 부분들이 서비스의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임을 인식한다면 쉽게 넘어갈 부분은 아닐 것이다. 서비스는 마치 유리잔과 같아 한 번 깨져 버리면 결코 회복이 쉽지 않다. 이러한 사소한 문제로 불편을 겪은 고객은 전체 서비스를 좋지 않은 시각으로 평가해 버리고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면 줄서기와 관련한 질 좋은 서비스 창출은 누구의 책임인가. 물론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의 자각과 의식수준도 중요하다. 그러나 서비스 시스템을 설계하고 전달하는 공급자의 역할이 초기단계에서는 보다 더 강조될 필요가 있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 일각에서 전개되고 있는 한줄서?운동은 이와 같은 줄서기에 대한 근본적 이해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