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행정부의 외교 안보팀을 설명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상대적으로 온건한' 국무부와 '이념적으로 보수적인' 국방부의 대립이다.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언론들은 9.11 테러가 나기 전 두 부처가 이라크 러시아 등 주요 현안에 대해 견해를 달리 하고 있다는 점을 화젯거리로 다루고는 했다. 국무부의 콜린 파월 장관과 국방부의 도널드 럼즈펠드 장관은 감정적으로나 개인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이념적으로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고 이들은 분석하고 있다. 국무부가 관용과 대외 약속을 중시하는 실용적인 입장을 선호하는 반면 국방부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최후 통첩이나 강력한 개입에 의존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파월 장관은 이라크 제재를 완화할 것을 주장하는 리처드 하스 등 비교적 온건한 인사를 브레인으로 쓰고 있다. 반면 럼즈펠드 장관은 공화당의 간판 외교 국방전문가로서 이라크 공격을 서슴없이 주장하는 폴 윌포위츠 부장관을 오른팔로 활용하고 있다. 이들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에도 테러전쟁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를 놓고 시각 차이를 드러냈다. 파월 국무장관은 아프간 전쟁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을 진정시키는 데 비중을 두는 듯했다. 반면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 제거라는 분명한 타격목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이들의 대립과 간격은 지난 1월29일 북한 이라크 이란 등 3개국을 싸잡아 '악의 축'으로 규정지은 부시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 이후 없어졌다. 온건파 파월 장관의 목소리가 사라진 것이다. 파월 장관은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이라크 체제 변화를 실천에 옮기기에 앞서 동맹 우방과 긴밀히 협의할 것"이라면서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으며 단독 행동에 나서는 방안도 상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미국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해 독자적인 군사 행동을 할 수도 있음을 이미 상정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만큼 이라크 공격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분위기가 강경으로 기울어졌으며 파월 장관도 결국 강경파에 밀려 제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됐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외로운 비둘기(온건파) 파월 장관의 목소리가 안들린다"고 지적했다. 이런 분위기 형성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콘돌리사 라이스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을 꼽는 사람이 많다. 라이스 보좌관은 부시 대통령의 최측근 안보 브레인으로 강경파의 축으로 꼽히고 있다. 파월 장관과 함께 흑인으로 고위직에 오른 라이스는 옛 소련과 동구 전문가로 꼽힌다. 라이스는 미국이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국제문제에 개입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는 지난 14일 백악관에서 부시 대통령의 아시아 3개국 순방을 앞두고 "북한체제의 근본 성격은 변한게 없다"고 규정하고 "그들과 대화하겠지만 대화 자체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부시 행정부를 진두지휘하는 딕 체니 부통령이 외교 안보팀의 이견을 조정하고 있지만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시절 국방부 장관을 지낸 경력 때문에 국방부 쪽에 기울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