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는 위대한 개혁자다. 어떤 공도 쳐내는 메이저리그의 프로야구 선수 이치로를 연상케 한다" 19일 서울로 떠난 부시 미국 대통령이 고이즈미 총리와의 회담에서 안겨 준 선물보따리는 찬사로 가득찼다. 도쿄 땅을 밟기 전까지는 '일본 경제가 골치를 썩인다'며 개혁스피드에 강한 불만을 감추지 않았던 그였지만,일본에 와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고이즈미 총리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지지율의 높고 낮은 것에 신경쓰지 않는다"며 "개혁을 늦출 수 없다"고 자신만만해 했다. "구조개혁만 외쳐댔지,경제는 더 엉망이 됐다"고 분노하는 반대파들의 공세에 몰렸던 그로서는 백만원군을 얻은 셈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번 회담은 미소와 우호를 앞세워 서로의 입맛에 맞는 걸 주고받은 나눠먹기였다. 미국이 안보협력 강화와 반테러 전쟁에 대한 지원다짐을 끌어냈다면,고이즈미 정권은 경제개혁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확인했다. 부시 정권은 일본에 대한 개혁 압박을 '지지'라는 정치적 수사로 포장해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같은 날 회담이었는데도 태평양 건너 워싱턴의 분위기는 영 달랐다. 미·일 재계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댄 자리에서는 원색 비난이 거침없이 쏟아졌다. 미국 재계 지도자들은 "일본이 불량채권 처리를 미적거려 세계 경제를 망친다"고 다그쳤다. 고이즈미 정권의 개혁 알맹이는 '불황'이다.부실기업은 문닫고,실업자를 양산하지 않는 한 완쾌를 기대할 수 없는 쓴 약이다. 경기대책으로 돈줄을 늦추겠다지만 튼튼한 기업들은 돈 쓸 생각을 하지 않는다.지지율 하락으로 과감한 정책 동원도 쉽지않다. 그런데도 부시는 정치적 칭찬을 푸짐하게 안겨줬다. 일본 야당은 고이즈미 총리가 부시 대통령의 리더십에 너무 끌려 다녀 미국의 군사행동 확대에 길을 열어준 인상을 받았다고 비판,"부시의 칭찬은 고분고분한 일본에 대한 선물"이라는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만신창이 일본경제를 수술할 고이즈미 총리가 부시의 찬사에 취해 엉뚱한 곳에 메스를 댄다면,그 피해는 일본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전세계에 퍼진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