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10:01
수정2006.04.02 10:03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이번 방한은 '악의 축'발언으로 대변되는 그의 강한 이미지 때문에 각별한 관심을 끌고 있다.
클린턴처럼 외교적이지도 않고 달변도 아니지만,'한다면 한다'고 알려진 그의 통치 스타일은 주변 국가들의 군사 외교 문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우리처럼 남북문제에 미국이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로 등장하는 경우에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부시 대통령의 대외정책기조가 우리 경제에 어떤 파장을 미칠까.
사실 당장 전쟁 위협이 새롭게 발생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의 증시나 경기 상황이 직접적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이보다는 미국이 자신의 경제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국제경제환경의 변화가 더 의미 있는 변수가 될 수 있다.
특히 8년 간의 민주당집권 후에 등장한 부시 행정부는 일견 1980년대를 풍미한 레이건의 강한 대외정책,보수적인 대내정책 기조를 상기시키는 측면이 있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미국의 '강한 달러'정책이다.
시장경제의 논리에 의하면 무역적자가 있는 경우 자국의 통화가치는 낮아지는 것이 정도이다.
그런데 국제자본의 흐름은 무역의 대가라는 수동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투자국의 수익성이나 안정성을 따라가는 능동적인 측면도 있다.
80년대 초 레이건 행정부가 무역적자를 감수하면서 달러화 강세를 견지한 데에는 당시의 국제정치 경제 상황이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냉전 대립이 극에 달한 70년대 후반기의 미국은 석유파동과 베트남 참전의 후유증으로 물가와 실업이 함께 상승하고 있었고,외교적으로도 중동 등 전략지역에서 구 소련에 밀리는 형국이었다.
레이건은 당선 후 구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지칭하며 강한 미국의 이미지를 일구어 나갔다.
달러화의 가치가 높으면 수출경쟁력은 다소 악화될지 모르지만,안정된 투자처로서의 미국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논리가 레이건 정부의 강성 대외정책 기조와 맞아떨어졌다.
물론 이후 무역불균형 시정을 위한 환율 조정이 있었지만,여전히 달러는 수급요인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단순한 상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레이건 행정부로 들어서며 수요관리 중심의 국내경제정책 기조도 바뀌었다.
공급 측면에서의 경쟁력 제고 없이는 지속적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경제철학은 미국 기업들의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뒷받침했고,그 효과는 90년대의 생산성 향상과 장기 호황으로 나타났다.
어려운 선거를 치른 부시 대통령에게 있어 9·11테러는 충격이었지만,동시에 대내외적으로 자신의 통치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였다.
군사 외교적으로 뭔가 두들길 상대가 나타난 것은 국내무대에서의 카리스마를 확보하는데 유리한 요인이 될 수 있다.
국내경제의 경우 경기순환적 부침은 있지만 구조적으로 좋은 경제를 물려 받았기 때문에 정책기조의 급격한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
대신 미국의 이익에 영향을 주는 국제경제의 추이에 상대적으로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이다.
일본경제의 지속적 추락이나 새로운 외환위기의 발생은 결코 미국에 득이 될 수 없다.
이는 그만큼 다른 나라의 국내 정책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커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이 강경하고 개입적인 대외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다른 나라들과 마찰이 생길 수 있고 우리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미국은 과거의 패권국가들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측면이 있다.
우선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지니는 합법성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그 누구도 개인의 견해에 근거한 자의적인 정책을 펼 수 없다.
나아가 통합된 세계시장에서는 대립보다 협력이 공동의 이익을 창출한다는 점을 미국 자신이 잘 알고 있다.
미국의 정치 경제구조와 정책결정과정을 볼 때 집권당의 이념 성향이나 대통령의 개성은 생각만큼 우리에게 큰 차이를 만들지 않을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우리가 이렇게 허둥대는 것은 외부충격이라기보다는 우리 내부의 문제를 노정하는 것일 수 있다.
중심을 잡고 냉정하게 따져보면 미국만큼 우리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나라도 드물다.
jjun@mm.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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