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 앞에 죽음은 왜 내세우는 걸까.게다가 계절은 만물이 대지를 박차고 소생하는 봄이지 않은가. 생명의 찬가를 불러도 부족한 계절에 차갑고 어두운 그림자가 느껴지는 죽음을 얘기하는 이유는 뭘까. 금속공예가 유리지(劉里知ㆍ57)씨. 유씨는 27일부터 3월 12일까지 서울 사간동갤러리 현대에서 생애 6번째 개인전 '아름다운 삶의 한 형식'을 열어 그동안 준비한작품을 내놓는다. 그가 개인전을 갖는 것은 11년만의 일이다. 출품작은 유골함, 사리함, 상여 등으로 모두 죽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작가는 삶을 직시하기에 가장 적합한 언어가 죽음이라고 본다. 삶과 죽음이 손등과 손바닥처럼 가까워 서로 떼어 놓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반장(如反掌)이라는 말처럼 그 사이가 지척인데도 우리는 항용 일절 무관한 것으로 치지도외한다. 유씨가 죽음을 응시하기 시작한 것은 20대 때로 무척 오래 전의 일이다. ≪주부의 벗≫이라는 일본 잡지에 유골함 제작을 의뢰했다는 한 여배우의 기사가 실렸는데,이것이 유씨에게 막연하나마 죽음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삶을 마무리하는 유골함이 죽음의 상징에 그치지 않고 삶의 아름다운 축약으로 다가오더라는것이다. 그의 작품은 보통 사람들이 피하고 싶어하는 죽음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는점에서 유다르다. 아름답게 살기 위해서는 죽음의 아름다운 의미를 깨달아야 하고,거꾸로 죽음의 의미를 똑바로 들여다봤을 때 삶은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게 그의 견해다. 따라서 전시 제목 '아름다운 삶'에서 '삶'은 '죽음'으로 치환해도 무방하다. 죽음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작가가 사용한 것이 바로 유골함이나 향로, 촛대, 사리함, 상여 등이다. 이들은 대부분 산 자가 죽은 자를 위해 만드는 장례용품이다.작가는 이 전통 소재들의 기능성에 조형적 예술성을 얹어 삶과 죽음이 영원의 세계에서 하나가 됨을 형상화했다. 재료는 금속, 석재, 목재 등으로 다양하다. 이인범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연구위원은 유씨의 작품에 대해 "장례를 중심으로 한 죽음의 천착은 가벼워질대로 가벼워진 (현대인의) 인생관은 물론 중심을 잃고 흔들리고 있는 공예에 대한 시각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고 평가한다. 모더니즘 1세대 작가로서 의식의 뒤켠에 내버려졌던 장례 중심의 죽음을 숨김없이 전면에 끌어내는 한편 근대성이라는 이름의 형식주의적 상투성에 이의를 제기한다는것이다. 1945년생 해방둥이인 유씨는 국내 화단의 원로인 유영국(劉永國ㆍ86) 화백의 장녀로, 서울대 응용미술과와 동 대학원을 나왔으며 지금은 모교 디자인학부 교수로있다.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