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이겼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카이사르가 자신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미리 알았거나 사라예보에서 황태자 암살이 실패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쿠오 바디스,역사는 어디로 가는가'(한스 크리스티안 후프 엮음,정초일 옮김,푸른숲,2만3천원)는 이처럼 운명적인 역사의 순간들에 렌즈를 들이댄다. 이 책은 나폴레옹이 최후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하더라도 역사의 흐름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의 시대는 이미 저물고 있었으며 한차례의 전투로 대세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현실의 트렌드를 놓쳐 몰락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었던 나폴레옹에게 이 전투는 다만 결정타로 작용했을 뿐이다. 스페인 무적함대의 침몰과 영국의 급부상은 어떤가. 당시 스페인 총독의 리더십 부족과 느린 정보 전달,함선과 물품에 대한 부정확한 자료 등이 겹쳐 신세계 지배권을 하루아침에 잃은 경우다. 반면 영국은 민첩성과 유연함으로 최강의 함대를 굴복시키며 해양 강국으로 떠올랐다. 온몸을 철갑으로 무장한 기사들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기동성 있는 신기술 무기의 제물로 몰락한 사례,베들레헴 유아 대학살의 의문점을 파헤치며 그리스도교적 신화를 재조명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폼페이 최후의 날 사람들이 피신하지 않은 이유는 불과 몇년 전에 한차례의 지진 소동을 겪은 뒤 재건중이었던데다 또 한번 재산을 두고 떠나는 게 내키지 않았기 때문.대재난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인간의 무력함이 그들의 화려한 벽화와 예술품에 투영돼 있어 더욱 역설적이다. 저자는 독일에서 태어나 뮌헨대학에서 역사학과 독문학을 전공하고 독일 제2TV 방송에서 연출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연출한 TV 역사다큐멘터리를 엮은 것이 이 책.이번에 나온 1권에서는 역사적인 전투와 전설이 된 죽음,신화가 된 재앙의 세가지 주제를 다뤘다. 오는 5월께 출간될 2권에는 배신과 스캔들,세기의 재판 등 흥미진진한 내용이 담겨 있다. 3백60쪽에 올 컬러 양장본.세련된 편집의 이 책은 지난 역사의 수레바퀴를 통해 인간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근본적으로 묻는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