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 19-21일 방한중에 밝힌 '북 정권-주민 분리 대응' 방식에 의한 대북 대화 제의를 북한이 22일 거부해 앞으로 북미관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이날 발표한 담화를 통해 "인민이 선택한 제도를 힘으로 변경시켜 보려고 망상하고 있는 부시정부와는 상종할 생각이 없다"며 부시 대통령의 대북 대화 재개 제의를 거절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입장은 한 마디로 ▲북한 정권의 부도덕성 시비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미국과는 더 이상 대화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요약돼 사실상 결별선언으로까지 비춰지고 있다. 북한은 부시 대통령이 지난달 29일(미국시간) 국정연설에서 `악의 축'이라고 발언한 직후에도 미국과의 대화 여지를 남겼었다. 담화는 "부시 대통령이 한.중.일 등 동북아 3국 순방중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한 제도를 악의적으로 중상하고 모독했다"고 비난한 후 "우리나라의 자주권을 침해하고 내정에 노골적으로 간섭하면서 우리를 힘으로 압살하려는 위험천만한 기도를 드러냈다"며 극도의 불만과 경계심을 표시했다. 북한의 이런 거친 반응은 부시 대통령의 대북 비난 또는 불신감 표현에 비춰 예견됐던 일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서울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회담후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전세계를 상대로 북한 주민들에게 애정을 갖고 있다고 표현하기 전에는 김 위원장에 대한생각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이 방한중에 '악의 축'과 같은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삼가했고 특히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 대응해 김 위원장에 대해서는 불신을 표시하면서도 북한 주민들에게 식량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혀 북미관계 진전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주민들에 대한 미국의 식량 지원이나 김 위원장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발언 수위 등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았으며 북한 정권 또는 지도부와 주민들 분리해 대응하는 미국의 대북 접근법 자체를 거부한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혼연일체' '군민일체' '사회주의 대가정'을 강조하고 있으며 수령과 당, 인민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사회정치생명체론'을 내걸고 있고 최소한 TV 등을 통해 비춰지는 모습에서는 지도부와 주민의 분리를 생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국내 언론들도 부시 대통령의 이분법적 접근법이 국가를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관념적 사유에서는 가능할지라도 정작 북한 정권과 주민을 상대로 따로 따로 정책을 추진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따랐다. 어쨌든 부시 대통령의 방한이 미국의 대북 접근에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는 일단 무너졌으며 최소한 표면적으로 양국 관계는 당분간 냉각기에 접어들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잭 프리처드 미 국무부 대북교섭대사의 방북은 당분간 어려울 전망이다. 그러나 북ㆍ미 양국이 언제까지 서로 떨어져 냉전적 분위기를 연출할 수는 없게 돼 있다. 제네바 핵 합의(1994년) 시한이 2003년이고 이는 또한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지 시한이기 때문이다. 양국 특히 미국은 어떻게든 북한의 핵 및 탄도미사일 개발 및 수출 또는 실전배치를 억제해야 하며 그 방법으로 전쟁이나 경제봉쇄 등의 방식을 택할 수는 없다는 공감대가 이미 형성돼 있다. 북한 또한 경제난 해결을 위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IBRD) 등에 가입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의 대화 제의를 무한정 기피할 수는 없다. 결국 양국은 당분간 냉각 국면 속에서 물밑대화를 지속하면서 타협점을 찾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서울=연합뉴스) 강진욱기자 kj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