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적극적인 자기 변신을 통해 '마이웨이'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직장에서 명예퇴직 등 구조조정을 당한 이들 뿐만 아니라 정부 중앙부처, 방송사, 일류 대기업 등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 중에도 인생 중.후반전 '새 도전'을 결행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평생 직장은 없고 평생 직업만 있다'는 시대 변화에 맞춰 '직업 전환'을 한 사람들의 스토리를 월요기획으로 소개한다. ----------------------------------------------------------------- 경기도 광주시 초월면 서하리 광주시설원예 영농조합. 봄 같은 겨울이라지만 새벽에는 아직 영하의 날씨가 이어지는데 아침 5시30분께면 당찬 인상의 중년 남자가 출근한다. '2월22일. 동부아파트 아욱 4㎏ 상자당 2천원×25, 맛타리버섯 4㎏ 상자당 1만5천원×20, 얼갈이 배추 단당 5백원×200…' 메모장에 '깨알'처럼 적어 놓은 주문 목록을 확인한 다음 포장작업장으로 바삐 걸음을 옮긴다. 푸른 빛이 선명치 않은 채소는 아낌없이 버리도록 언명해 놓았지만 은근슬쩍 끼워 넣는 조합원도 있다. 조합원에게 넌지시 핀잔을 한 번 주고 과감하게 버리는 시범을 보인다. 변명이라도 하듯 '요즘 영 주문이 시원치 않다'는 조합원의 넋두리를 한참 고개를 끄덕거리며 들어준다. 영락 없는 '동네 이장님'이다. 신세대 최고 인기 직종의 하나인 KBS PD를 그만두고 고향인 광주로 돌아온 신동헌씨(50.광주시 쌍령동). 다음달이면 그가 '신PD그린캠프'를 차리고 농산물유통업을 한지 10개월이 된다. 1978년 TBC에 입사, KBS를 거치며 20여년간 PD로 일한 전력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새 일'이 몸에 배었다. 그는 최근 5년간 농업 관련 프로그램을 맡으면서 '농업'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그는 '신PD도 언젠가는 농촌 간다'는 농업경영 서적을 낼 정도로 스스로 이론 무장을 했다고 판단한 작년 6월 사표를 던졌다. "방송과 도회생활에 대한 미련도 있었고 '너무 나 자신의 삶에 집착하는게 아닐까' 하는 회의도 없지 않았다"는 그는 "나이가 더 들면 떠날 용기를 못낼 것 같아 마누라와 사전 협의도 없이 광주에 살 곳을 잡아버렸다"고 '결행과정'을 설명했다. 부인 김미응씨(44)는 남편의 '제2 인생 선언'에 처음에는 펄쩍 뛰었다. 이제는 남편이 하고 싶은 대로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는 부인은 "고등학교 1학년,중학교 1학년이었던 두 아이 교육 때문에 선뜻 동조하기 힘들었다"고 당시의 고뇌를 들려 주었다. 고심을 거듭한 끝에 김씨는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주말부부'로 살기로 했다. 신씨 주변 사람들은 그의 '인생 전환'에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전 직장 후배인 강석무 KBS PD는 "과거 2년여 동안 같이 작업을 하면서 신 선배의 농업에 대한 열의를 익히 알았다"며 "'귀농' 의사를 밝혔을 때 적극 지지했다"고 말했다. 신씨가 현역 PD시절 '농어촌 지금' 같은 프로그램을 하면서 얼굴을 익혀 둔 농민만 1천여명에 달한다. 신씨는 이 농민 인맥(?)을 바탕으로 농촌과 도시 아파트 소비자들의 직거래 길을 터주는 일을 하기로 했다. 농업이 '돈 되는' 산업으로 발돋움하려면 유통 혁신이 필수라는 PD시절 지론을 몸소 실천한 셈이다. 신씨 회사 고객인 광주시내 동부아파트 부녀회장인 한경옥씨(47)는 "감호박을 시식해 보라는 전화를 처음 받았을 때는 시큰둥했지만 호박 꼭지를 따는 순간 상큼한 향과 풍부한 즙에 바로 신뢰감을 갖게 됐다"며 안심할 수 있는 먹거리를 식탁에 올려 놓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아직 수익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농민들이 만족할만한 값에 사들여 도시 소비자들에게 저렴하게 파는 즐거움으로 유통 마진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 "서두르진 않습니다. 고객이 인정해서 입소문을 내주시면 수익성도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곧 서울까지 직거래를 터 볼 계획이라는 신씨는 오는 27일엔 광주 동부아파트 노인정에서 KBS 입사 동기인 아나운서 원종배씨(48)를 초청, '어린이의 자기생각표현 지도법'에 대해 주부들과 얘기하는 자리를 주선하는 등 공동체활동에도 열심이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