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설마'가 빚어낸 파업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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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소 몇개가 파업에 들어가도 국민 생활에는 별 지장이 없다는 정부 발표가 어느 신문에 실렸습디다.
이같은 상황 인식에 대해 조합원들 사이에선 '실력을 한번 보여줘야 한다'는 말이 많습니다"
철도 발전 가스 등 국가기간산업 3개 노조의 연대파업 시한이 10여시간 앞으로 다가온 지난 24일 밤.서울 마포구 공덕동 중앙노동위원회 사무실에서 막판 협상을 벌이던 발전 부문의 한 노조 간부가 정회 시간중 기자에게 한 말이다.
때론 밤잠을 설쳐가며 하루종일 교대로 전력을 생산하는 자신들의 고충을 정부가 '몰라도 너무 몰라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간부는 "솔직히 국민의 따가운 시선과 구속될 위험을 감수하며 파업하고 싶은 노조원이 몇명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철도·가스·발전산업 구조 개편의 의사 결정권을 쥐고 있는 건설교통부와 산업자원부는 지난 22일 노동관계 장관회의 이전만 해도 노조와의 대화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
어느 민주노총 간부가 "정부가 공공노조의 파업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처럼 정부는 파업 강행에 '설마' 해오다 교통대란이 벌어지자 목소리를 높였다.
이한동 국무총리까지 나서 "철도·발전·가스노조는 민영화 철회 등 부당한 요구 조건 관철을 위해 국민의 발과 국가의 동력을 볼모로 불법파업을 전개하고 있다"며 "이번 파업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배신이며 보상할 길이 없는 죄악"이라고 '뒷북'을 쳤다.
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 4년을 앞둔 지난 24일 국민의 정부가 IMF외환위기를 극복했다고 평가했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등급 상향 조정을 검토하기 위해 방한해 있는 만큼 이처럼 자부할 만하다.
그러나 이번 파업은 공공·노동부문의 개혁이나 정부의 대응이 지난 4년간 나아진 게 없다는 점만 부각시키고 말았다.
이로 인한 피해는 출퇴근 길에 나선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9개 민간경제연구소 소장들이 공공·노동부문의 개혁 성과에 'D학점'을 매긴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듯하다.
주용석 사회부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