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념 부총리는 자기 할 일 얘기는 제쳐놓고 왜 남의 일에만 배놓아라 감놓아라 하고 다니는가' 대학기여입학제 도입을 주장한데 이어 법인세 1%를 정치자금으로 쓰도록 제도화하자는 그의 발언이 보도된 뒤 만났던 어느 대학교수의 말이다. 자리를 같이했던 전직 관료 한 분이 "그 사람 참견하는게 전공인 기획원 출신이잖아"라고 해 한바탕 웃고 말았지만,내가 그 자리에서 느낀 것은 보통 사람들의 정치자금에 대한 만만찮은 거부감이었다. 정말 난해한 게 정치자금이고 또 정치인들이다. 전경련 정기총회에서 '부당하고 불투명한 정치자금을 내지 않겠다'고 결의한데 대한 여야 대변인들의 반응은 그런 느낌을 더하게 한다. 자기들에게 돈 안주겠다는데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니 약간은 우습기도 하다.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정치자금과 얽힌 비리를 해결하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을 것같은데,과연 실제가 그런지는 의문이다. 정당이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존재이고 그 운영과 선거비용 등으로 돈이 필요할 것 또한 분명한 이상 정치자금을 국고에서 보조하는 것도 있을 수 있지 않느냐는 논리는 분명히 설득력이 있다. 현행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에 따라 유권자 1인당 8백원(선거가 있으면 선거마다 8백원 추가)씩 계산해 국고에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런데도 법인세 1%를 정치자금으로 돌리자는 주장이 썩 내키지만은 않는 까닭이 무엇일까. 정치판이 모든 것을 닥치는대로 삼켜버리는 블랙홀 같은 존재라면, 좀더 쉽게 말해서 국고보조가 늘어나더라도 '비리성 정치자금' 요구는 여전할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법인세 1%를 정치자금으로 지원하자는 발상은 한마디로 우스워진다. 과연 연간 1천7백억원(작년 법인세 징수액 17조원의 1%)정도 국고지원을 늘리면 '검은 자금' 뒷거래가 줄어들게 될까. 정치자금을 국고에서 지원한다면 그 용도·사용처 등에 대한 철저한 투명성이 확보돼야 할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현행법도 국고보조금을 인건비·소모품비 기타 정당활동에 소요되는 경비 등 10가지 용도로만 지출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사실상 있으나 마나한 조항일 뿐이다. 보조금을 20% 이상 정책개발비로 쓰도록 강제하고 있는 법규정과 변변한 의원입법 하나 없는 현실간의 부조화는 그렇게밖에 달리 이해할 길이 없다. 국고보조금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용도로 쓰여졌다는 것을 분명히 입증할 수 있는 정당 내부구조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추가적인 국고지원은 문제가 있다. 정치지도자 직계가족들의 엄청난 부(富)가 문제된게 한두번이 아니라는 점을 되새기면 더욱 그러하다. 정치자금 국고보조가 기업부담을 늘리는 결과가 돼서도 안된다. 법인세를 3억원 이상 낸 법인에 대해 납부세액의 1%를 정치자금으로 기탁토록 의무화하자는 주장은 바로 그런 점에서 문제가 있다. 실질적으로 법인세 부가세 형태의 정치세를 신설하는 꼴이 돼 다른 어느 나라에도 없는 모양 사나운 세제를 빚어내게 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이미 GDP(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세금비중이 미국과 비슷한 수준일 정도로 높은 마당에 또 국민부담을 늘려서는 곤란하다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진정코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를 확대해야할 필요가 있다면 그 구체적인 방법도 다각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법인세의 1%는 적절치 않다. 현행 정치자금법을 개정,유권자 1인당 8백원인 보조금 산출기준을 높이는 것이 가장 간명하고 실효성이 있다. 선거가 있는 해와 없는 해 정치자금 소요가 현격히 다를 것이라는 점만 감안하더라도 매년 법인세 1% 지원은 적절치 않다. 물가를 감안해 국고지원액이 늘어나도록 하려면 유권자 1인 기준 국고보조금을 매년 물가상승률 만큼 연동시키는 것으로 족하다. 그러나 이런 방법론은 따지고 보면 다음 다음 문제다. 역시 가장 먼저 생각해야할 점은 법인세 1% 정치자금 지원이 과연 정치풍토개선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냐다. 그게 불분명하다면 논의할 가치도 없다. 혈세를 비리성 자금의 절대 규모만 확대하는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본사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