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수행자들을 지도할 때 특별히 어떤 점을 강조하십니까" "(검지 손가락으로 질문자를 가리키며) Who are you?(당신은 누구인가)" "저는 한국경제신문 기자입니다" "No.Who are you?" 좌중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질문자가 누구인지 묻는 줄 알고 소속을 밝혔더니 "너 자신은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으로 되받아 왔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충남 논산시 두마면 향한리 계룡산 국사봉 기슭의 국제선원 무상사(無上寺).겨울철 석달 동안 외부출입을 삼간 채 수행정진하는 동안거(冬安居) 해제에 즈음해 그동안 수행자들을 지도해온 이 절의 조실 대봉(大峰.52.미국인) 스님을 만났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해 모른다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합니다. 부처님도 6년 동안 '모른 채' 수행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나의 상황과 내 의견 등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으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하늘은 파랗고 나무는 푸르고 설탕은 달고 개는 멍멍 짖지요. 모든 것을 그 자체로 볼 수 있으면 진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대봉 스님은 "수행의 목적은 우리의 본성을 깨달아 중생을 돕는 것"이라며 이 방향만 뚜렷이 가지면 모든 것이 수월하게 이뤄진다고 강조한다. 자각각타(自覺覺他·나도 깨닫고 남도 깨닫게 함) 자리이타(自利利他·나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함)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함)이 수행하는 이유라는 얘기다. "자기의 의견(고집)에 집착하지 않고 버리면 진리를 되찾을 수 있어요. 오직 모르는 마음뿐,이 마음만 가지면 모든 사람들과 조화를 이뤄 존재할 수 있습니다" 선사에게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느냐"고 물었더니 "Your coat is black(당신의 외투는 검은 색이다)"이라고 했다.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이다. '오직 모를 뿐'이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참구하면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바깥에서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안쪽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모든 것의 인연을 보게 돼요. 우주 전체가 나를 뒷바라지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러면 자비심이 자동적으로 나타나지요" 대봉 스님은 "우리 마음 속의 일을 제대로 하고 맑은 마음으로 본다면 바깥의 일은 저절로 잘되지만 안에서 할 일을 하지 않고 마음이 희미하면 바깥 일에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는 법"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열한살 때 가족과 함께 일본을 여행하면서 본 가마쿠라 대불이 마음에 와 닿았다는 대봉 스님이 본격적으로 불교를 접한 건 지난 77년.예일대학에서 숭산 스님(화계사 조실)의 강연을 듣고 나서다. 평소 '제정신으로 사는 길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갖고 있던 터에 숭산 스님의 법문은 그의 인생을 바꿔 놓을 만큼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당시 숭산 스님의 법문은 '집착은 미친 짓이다. 조금 집착하면 조금 미친 것이고 많이 집착하면 많이 미친 것이다. 하나도 집착하지 않으면 제정신이다'로 요약된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뒤 4년간 병원에서 상담사로 일했던 대봉 스님은 이후 숭산 스님 밑에서 세차례 용맹정진한 끝에 출가를 결심한다. 로드아일랜드의 프라비던스 선원에서 2년간 행자 생활을 한 뒤 지난 84년 도문(道門)이라는 법명과 함께 삭발염의(削髮染衣)했다. 출가 후에는 공주 신원사에서 '너는 누구인가'를 화두삼아 수행했으며 지난 99년 4월 숭산 스님으로부터 '대봉'이라는 법호와 함께 법을 인가받았다. "수행을 할 땐 '오직 할 뿐'입니다. 접시를 닦건 운전을 하건 다른 일을 하건 모두 수행으로 삼으면 됩니다. 선방에 앉아 있는 것만이 참선은 아니지요. 생각 이전의 '마음'이 무엇일까,이렇게 의심하는 마음이 끊이지 않는다면 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는 것이 더욱 선명해질 거예요. 생활과 수행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생활 자체가 수행이지요" 이번 동안거에 참여한 대중은 미국 중국 러시아 폴란드 체코 등 세계 15개국에서 온 스님과 신도 등 87명.대봉 선사는 매주 수요일 오후 전체 대중과 선문답을 주고받고 1주일에 두번씩 개인별 인터뷰를 하는 등 수행을 지도해왔다. 전통 불교의 1천7백 공안과 숭산 스님이 현대적 문화상황에 맞게 만든 공안집 '세계일화(世界一花)' 등을 가지고 문답을 주고받는다. 언어적 의미를 벗어난 선문답이 혹시 말장난은 아니냐고 물었더니 대답은 단연 '노(No)'다. "선문답은 말장난이 아닙니다. 그러나 공안 자체를 뚜렷이 깨닫지 못하거나 스승이 적절히 가르치지 못하면 말장난이 되지요. 선문답이 말장난이 되느냐 아니냐는 스승과 제자에 따라 달라집니다" 공안이 문제가 아니라 말 그 자체에 매달리는 사람이 문제라는 뜻이다. 대봉 스님은 안거를 마치고 떠나는 사람들에게 "읒?하라(Just do it).집중하라.그러면 본성이 행복해지고 그 행복이 모든 사람들에게 퍼져나갈 것"이라며 쉼없는 정진을 당부했다. 그 자신도 해제 기간에는 중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지의 사찰을 돌며 참선 수행을 지도할 계획이라고 했다. 논산=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