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반(白飯)은 문자 그대로 흰밥이란 뜻이다. 예전 춥고 배고프게 살던 시절에는 흰쌀밥이면 최고였기에 고봉밥에 간단한 반찬 몇가지 곁들여서 팔았던 음식의 이름도 백반이 되었다. 당시에는 추청벼(아키바레)니 다마금이니 하는 좋은 쌀로 지은 밥을 최고로 여겼지만 반찬에는 그다지 공을 들이지 않았다. 단순히 밥을 많이 먹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때보다 생활이 윤택해진 요즘에는 완전히 양상이 바뀌었다. 같은 이름이라도 순수한 백반보다는 현미밥이나 잡곡밥이 인기가 있고 반찬도 20가지는 넘어야 경쟁력이 있다. 이쯤되면 백반이 아니라 거의 한정식급이다. 그래서 갈수록 음식점마다 정식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는지 모르겠다. 백반은 주로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음식이라 서울보다는 지방에 잘하는 집이 많고 서울에서는 강남보다 강북이 낫다. 강북의 이름난 백반집들을 소개한다. 신일식당(인사동.02-739-5548)=음식점에 들어서는 순간 잘못 왔다는 후회가 든다. 실내가 비좁고 허름하기때문이다. 그러나 음식이 나오기 시작하면 생각이 금방 달라진다. 깔리는 반찬들을 눈으로만 봐도 음식에 쌓인 '내공'이 느껴진다. 요즘 백반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계란찜 나물 전 생선구이는 기본이고 밑반찬인 젓갈 장아찌 김치도 보통수준이 아니다. 이집주인의 고향이 전라도여서 젓갈 맛이 좋은 것은 당연. 친정인 순창에서 보내주는 장아찌도 다른 식당의 장아찌와는 맛이 다르다. 장맛 좋기로 이름난 순찬고추장에 박았던 장아찌도 맛을 돋우고 있다. 2,3년 묵었다는 김치는 조금 물렀기는 해도 시큼한 맛이 나지 않고 잘 곰삭아 손이 절로 간다. 함께 나오는 제육 또한 별미다. 돼지냄새가 전혀 안 나고 입에 들어가자마자 부드럽게 녹아버린다. 홍어까지 곁들이면 그만인데 2만원 짜리 특정식에만 나온다. 특정식은 한정식급이고 7천원짜리 된장찌개정식이 백반에 해당되는데 장맛을 자랑하는 집이라 먹을만하다. 1만원짜리 신일정식을 시키는 사람들이 많다. 남도식당(종로1가 피맛골.02-734-0719)=종로거리에서 상민이 말탄 높은 양반을 만나면 꿇어 엎드려야 했던 조선조때 이를 피하기 위해 이용됐던 이면도로가 바로 피맛골이다. 지금도 서민들은 종로 대로변을 피해 피맛골에서 값싸고 맛있는 식당들을 찾는다. 이 집은 갈 때마다 "이렇게 싸게 받아도 장사가 될까"하는 생각이 들정도다. 비록 뛰어난 맛은 아니라 해도 3천원짜리 백반이 푸짐하고 꽤 먹을만하다. 북어국과 선지국은 전문식당보다도 낫고 나물이며 밑반찬들도 기대이상이다. 계란찜과 김도 추가된다. 이 정도면 아무리 "짠돌이"라도 먹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닭고기볶음등 고급 반찬 몇가지가 추가되는 4천원짜리 정식은 더욱 싸다는 생각이 든다. 잡곡밥으로 먹으면 5백원이 추가된다. 3~4명이 갈경우 돼지불고기나 소불고기를 추가로 시키면 반주까지 곁들일수 있어 제격이다. 식당밖에 연탄불을 피워놓고 석쇠로 구워내 40~50대 중장년층들은 어린시절의 향수까지 느끼게 한다. 내강(다동 코오롱빌딩 맞은편.02-777-9419)=일렬로 양쪽 벽을 향해 앉게 되어 있는 좁은 실내가 이색적이긴 하지만 이 집이야말로 백반 본래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우선 밥이 좋다. 항상 금방지은 따끈따끈한 밥을 주는데 윤기가 잘잘 흐른다. 좋은 쌀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정작 이 집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배춧국이다. 배추는 계절별로 맛의 차이가 큰 데 연중 어느때 가도 맛에 차이가 없이 뛰어나다. 반찬은 깡된장 무말랭이 장아찌 김등 식물성이 주류지만 하나 하나 정성이 담긴 반찬이다. /최진섭.음식평론가.MBC PD (choijs@mbc.co.kr)